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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지음지교(知音之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10 17:24

수정 2015.03.10 17:24

[여의나루] 지음지교(知音之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프랑스 화가 밀레와 사상가 루소의 우정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부분 화가가 그렇듯이 밀레도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가난에 허덕이던 밀레에게 어느 날 루소가 찾아와 말했다. "여보게,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 내가 화랑에 자네의 그림을 소개했더니 구입의사를 밝히더군. 그러면서 나에게 그림을 골라달라고 선금을 맡기더라니까!" 밀레는 루소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밀레는 무명 화가였기 때문이었다. 루소는 그렇게 300프랑을 밀레에게 건네주었고, 생활이 어려웠던 밀레에게 그 돈은 생명줄과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고 있다는 희망을 그에게 안겨주게 되어 점차 밀레는 안정감을 갖고 작품활동을 하게 되었다.

훗날 밀레의 작품은 진짜로 화단의 호평을 받아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했고, 어느 날 여유를 찾게 된 밀레가 루소의 집을 찾아갔을 때 몇 년 전 루소가 남의 부탁이라며 사간 그림이 그의 거실 벽에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밀레는 그제야 친구 루소의 깊은 배려의 마음을 알고 그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가난에 찌들어 있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사려 깊은 루소는 남의 이름을 빌려 그의 그림을 사주었던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친구는 있다. 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친구 관계도 바뀌어 왔다. 필자의 눈에 비친 요즘 신세대의 친구 관계엔 왠지 깊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필자가 신세대의 가치관이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우정의 깊이나 끈끈함이 변치 않았으면 하는 필자의 바람이 지나쳐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신세대는 'PANTS'이다란 말이 있다. 풀이하면 개인주의적(personal)이며, 흥미본위(amuse-oriented)이고, 자연스러움(natural)을 좋아하며, 성별 구분(trans border)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자기 사랑(self-loving)에 빠진 세대라는 뜻이다. 이유인 즉 신세대는 형제가 적어 자신이 최종결정자가 되어야 하며, 친구에게는 경쟁자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진정한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고 한다. 상호의존성이 없어져 점점 사회성이 낮아지고 자기 속으로 빠져드는 개인주의적 행태가 그 특성이 돼버린다.

신세대는 앞으로의 우리 사회를, 나라를 책임지고 끌어가야 할 중요한 책무를 지고 있다.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는가, 행동의 방향성을 어떻게 정하는가 하는 것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 자신의 감정에만 따라 움직이는 감각적 개인주의화된 신세대가 상황의 현재성과 합리성만을 너무 중시하게 되면 인간성을 점차 상실해갈 거라는 우려가 있어서다. 더불어 사는 지혜, 배려하는 마음 이런 가치가 정말 소중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밀레와 루소, 관중과 포숙 같은 소중한 우정이 인생을 아름답게 하고 사회를 풍성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음지교(知音之交)란 말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와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된 친구 관계다.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던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는 고사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를 이르는 말이다.
과연 나에게 지음인 친구가 몇 명이나 될까. 바쁘게 사는 젊은이들에게 과연 친구란 존재는 내게 무엇인가 꼭 묻고 싶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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