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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초등학교 '방과후' 신청있던 날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11 16:41

수정 2015.03.13 17:56

[차장칼럼] 초등학교 '방과후' 신청있던 날

학교 정문 앞 검은 승용차들이 배회를 시작한 시간은 자정을 갓 넘겼을 무렵이다. 학교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 새벽 3시가 되기 직전, 어디선가 "타다닥" 소리가 났다. 누군가 닫힌 교문 앞에 1등으로 섰고, 이를 확인한 두세 명이 동시에 차에서 뛰어내렸다. 뒤이어 우르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해 10분 만에 줄은 50미터 이상이 됐다.

오전 5시 정각. 육중한 철문이 "철커덕" 열렸다. 대열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그 순서 그대로 본관 3층으로 향했다.
오전 6시. 허겁지겁 학교에 당도한 신입생 엄마는 3층부터 시작된 줄이 1층 바닥까지 꼬리를 물고 늘어선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접수가 시작된 시각은 오전 8시. 밤잠을 설치며 새벽 3시부터 줄을 섰던 이들은 신청을 끝낸 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왔다. 이를 지켜본 이들이 내뱉은 말은 비슷했다. "내년엔 밤 12시부터 줄을 서고 말겠어."

이 진기한 풍경은 다름 아닌 초등학교 방과후학습 신청 장면이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 현장이 2015년 3월 한국 초등학교에서 빚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이뤄지는 방과후수업은 사교육비 경감, 공교육 강화 차원에서 외부 사설학원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외부 학원에선 접하기 힘든 과학·실험·공학 과목이 특히 인기다. 이 과목을 원하는 초등학생, 이 과목을 기필코 수강하게 하고 싶은 학부형의 열망이 이 '방과후 전쟁'을 촉발하는 것이다.

방과후 대란은 온라인으로 신청 방법을 바꾼 학교도 피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맞벌이가정의 남편인 대기업 차장 배모씨는 온라인 신청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회사 컴퓨터 앞에 대기했지만 그날따라 회사 인터넷이 느림보였다. 상황을 수습하기까지 지체한 시간은 2분. 그사이 희망 과목들은 모두 마감됐다.

기자 역시 올해 비로소 이 학부형 대열에 끼다보니 원치 않아도 이 믿지 못할 현장의 실상을 눈앞에서 확인하게 된다. 얼마 전 고등학생 학부형인 지인에게 "요즘 입시전쟁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라며?"라고 했다가 심한 핀잔을 들었다. "옛날 얘기야. 이제 유치원부터야." 유치원 아이에게 무슨 입시 준비를 시켜야 한다는 건지. 하기야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다섯 살 무렵 담당 보육교사로부터 우리 아이만 한글을 못 쓰니 지도 바란다는 전화를 받은 기억도 난다.

날 때부터 무한경쟁에 뛰어들게 되는 아이들. 무사히 미로 같은 입시 관문을 통과해 빛나는 대학 졸업장을 받아든다 해도 그 뒤 갈 곳 없는 청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대기업들은 이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다며 입사시험에서 스펙을 안 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기업들은 직원을 뽑아보니 어학실력 등 화려한 스펙이 실무에 별 도움이 안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 보면 시장은 변하는데, 안 변하고 있는 곳은 교육당국이다.
수요에 맞는 정책을 계속 그렇게 외면할 것인가. 방과후수업만 해도 사전 수요조사를 해서 반을 개설할 수 있게 하면 그것으로 되는 것 아니었을까. 답답하고 서글픈 마음 가득할 뿐이다.

jins@fnnews.com 최진숙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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