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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산행의 추억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17 17:03

수정 2015.03.17 17:03

[여의나루] 산행의 추억

젊어서부터 산과 인연을 맺다 보니 산은 오랜 친구처럼 늘 친근하고 그립다. 산이 나에게 손짓하고, 말을 걸고, 나를 위로한다. 처음 가 보는 산행에는 호기심과 기대로 소풍 떠나는 애처럼 가슴이 설렌다.

좀처럼 가기 어려운 멋진 이국 풍광은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빛바랜 사진처럼 간간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자연이 선물한,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외라 하기도 그렇지만 외국 어디보다 더 가기 어려운 산이 금강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절경에 대한 예찬을 금강산만큼 많이 듣는 산도 없으리라. 얼마나 빼어났으면 '묘향산, 구월산은 눈 아래에 깔려있어 흙무더기와 같이 보인다'고 했을까. 꿈에 본 '상팔담'을 10여년 전 실제 두 눈으로 보았을 때, 진경산수화에서 보던 풍경이 '만물상' 안에 그대로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그 감회는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신라 시대부터 선비들이 금강산의 빼어남을 그렇게 많이 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외국 풍광의 기묘함과 장엄함을 말한다면, 시나이반도 남단의 모세산 일출이 떠오른다. 모세가 여호와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모세산. 십수년 전 산 아래 유명한 카트리나 수도원에서 새벽 3시 전에 출발해서 해 뜨기 직전 정상에 닿았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근육질의 붉은 빛 사암들과 절벽들, 바위 사이로 깊이 팬 계곡으로 햇살이 스며들면서 대자연이 연출하는 입체 파노라마는 신비감을 자아내는 장관이었다.

또 다른 느낌의 일출 장관은 안나푸르나 봉우리에서 만났다. 3년 전 안나푸르나를 비롯한 히말라야 연봉의 만년설을 보면서 걸었던 트레킹은 이색적이고,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숙박시설이나 음식점 등이 잘 갖추어져 있는 데다 산언저리를 돌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한 코스였다. 눈이 시리도록 하늘은 맑고 푸르러 시계(視界)가 멀리 뻗어나가 먼 산들이 손 닿을 듯 금방 다가온다. 가파른 경사지를 개간한 계단식 밭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길. 그렇지만 걷다 보면 언젠가는 길 끝에 도달하기 마련. "비스타리 비스타리(천천히 천천히)" 네팔인의 안내대로 좀 천천히 가면 어떤가.

지나는 마을마다 네팔 사람이 전하는 "나마스테"라는 인사말과 미소 그리고 눈 맞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의고 존경이다. 마을 어귀 장대(초르텐)에 걸려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 깃발에는 "옴마니밧메훔"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기원하는 티벳불교의 진언이 적혀 있다. 사흘을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덧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코앞까지 다가선다. 갑자기 하늘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설산이 바로 눈앞에 나타날 때의 그 경이로움이란. 압권은 안나푸르나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푼힐 전망대에서 맞은 일출이었다. 어둠에 감싸인 안나푸르나 연봉 정상부터 햇살이 퍼진다. 차츰 아래로 내려오면서 어둠을 걷어내고, 이윽고 주위가 밝아지면서 마침내 붉은색으로 물든 연봉들이 하얀 눈 속에 빛나고 있는 모습을 쳐다본다는 것. 너무나 황홀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히말라야 수직절벽의 하얀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거대한 설산은 해가 고개를 들어올릴수록 각도와 거리, 조도(照度)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했다. 이 신비감은 필설로 감당키 어렵다.

계속 걸으면서 머리를 비우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단순해진다. 복잡하고 꽉 짜인 일상의 코드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갈망한다.
나는 그 자유를 폐부 깊숙이 들이쉬는, 산 공기에서 절절이 느껴본다. 오늘도 다질링 차의 향기 속에서 안나푸르나를 가만히 떠올려 본다.
산은 계속 내 가슴속에 살아 나에게 끊임없이 활력을 주고 있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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