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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성공주의 사회에서의 행복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18 16:58

수정 2015.03.18 16:58

[fn논단] 성공주의 사회에서의 행복

요샌 자전거 길도 잘 닦여 있어서 사방팔방으로 달릴 수 있다. 자전거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승용차로는 맛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싱그러운 봄 공기와 아지랑이를 가르고 달리다 보면 가슴팍으로 흐르는 땀방울의 신선함에 확 트이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멈춰 서서 강 위에 부서지는 빛 물결에 젖어들고 힘들면 걸으면서 파릇파릇한 새싹에 감탄하기도 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느림의 미학' 등의 책들이 왜 우리를 그렇게 강하게 끌어당기는지를 이 느리게 가야만 볼 수 있는 자연 앞에서 새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발맞춰 각 지자체들도 느림의 콘셉트로 도시민들을 손짓하고 있다.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슬로 시티'라는 표어를 곧잘 볼 수가 있다. 시골장터를 연상하면 되는데 그렇다고 전통적인 5일장의 성격은 아니다. 그 지역의 특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거라는 예상이다. 도시민에게는 경쟁과 가속도와 초조, 불안 등으로 혼탁한 내면을 세척할 수 있는 즐거운 나들이가 될 수도 있다.

현실 복귀를 활성화시키는 이러한 벗어남과 달리 서점가에서는 한창 행복에 대한 갈망, 혹은 강박이 정도 이상으로 활황을 빚고 있다. 제목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도한 행복 강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책들은 대부분 갑갑한 도시와 전쟁 같은 경쟁, 그리고 소외와 탈락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으로 들어가라고 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러한 책들의 특징은 공적인 관계로부터 벗어난 사적인 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사생활의 영역 속에 과도하게 침윤돼 있다.

이 모든 행복 추구 흐름의 뒷면에는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 속에 있으며 그로부터 벗어날 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현실 진단이 가로놓여 있는 듯하다. 그렇듯 고통스럽기에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절박한 강박이 저러한 행복 추구 책들로 달려가게 했던 것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서점에 진열된 무수한 행복지침서 바로 옆에는 거의 그만큼의 성공지침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무수히 범람하는 행복 가이드 서적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여전히 불행하게 남아 있는 것이며 반대로 우리가 그렇게도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 가이드 책들이 저렇게도 무성하게 번창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사회로부터 벗어나 찾아가려는 그 '단절된 행복'이란 그러나 생각과 달리 그리 큰 만족을 줄 것 같진 않다. 행복은 사회 속에서, 그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가능한 것이지 그 틀을 벗어난 과도한 갈망은 어쩌면 유배지에서의 '서러운 자유'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적 장치를 통해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점차 줄여나가야 하며 동시에 행복에 대한 과도한 추구도 현실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규정 속도 100㎞의 급박한 성공 제일주의 사회에서 10㎞의 '소일의 철학'으로만 살아간다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엄청나게 큰 대형사고가 발생하리라 생각된다.
성공과 행복 사이, 이 갭을 줄이기 위한 우리 사회 전체의 지혜와 합의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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