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고장난 금융과 금융당국의 자기혁신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22 16:45

수정 2015.03.22 16:45

[데스크 칼럼] 고장난 금융과 금융당국의 자기혁신

고장난 금융으로 인한 어두운 경험은 의외로 빈번한 데다 뿌리도 깊다. 실물경제가 정상궤도를 벗어난 탓에 금융이 고장났는지, 금융이 고장 나 실물경제를 뒤흔들었는지 모호한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금융은 자주 고장을 일으킨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고장난 금융이 세계 경제 전반을 뒤흔든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금융이 파생상품을 통해 위험을 지나치게 팽창시킨 게 핵심 원인이 됐다. 고장난 금융으로 인해 2008년 우리나라의 실질경제성장률이 2.3%를 기록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0.3%까지 급락했다. 대규모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고서야 가까스로 마이너스 성장을 면한 참담한 성적표였다.


1998년 외환위기는 국내 금융이 고장을 일으킨 사례다. 몇몇 원인이 있지만 국가 경제규모나 기업의 체력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신용(대출)이 창출된 게 파국의 씨앗이 됐다. 기업에 덧씌워진 거품이 꺼지면서 한보, 진로, 기아 등 대기업이 잇따라 좌초했다. 당시 동서증권, 고려증권 등이 문을 닫으면서 금융회사는 도산하지 않는다는 신화도 깨졌다. 1998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6.9%로 유사 이래 최악의 경제난으로 기록됐다.

지난 4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갑자기 '금융 고장론'을 들고 나왔다. 의도된 도발(?)이었는지 그동안의 생각이 무심결에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발언의 수위가 상당히 높았다. 최 부총리가 언급한 금융 고장론은 크게 보면 현재 우리 금융이 국가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질타다. 예전처럼 금융이 고장 나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제 역할을 못해 우리 경제의 활력이 되어주기는커녕 외려 후퇴시키고 있다는 불만으로 풀이된다.

그는 '금융 고장론'의 근거로 "경제가 발전하면 금융업권의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늘어야 하는데 지금 금융업 취업자는 급감하고 있고 GDP 비중도 5%대에 주저앉았다"고 제시했다.

'주저앉았다'는 지적이 그다지 적절하지는 않지만 일리는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GDP에서 '금융 및 보험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이전까지만 해도 5%대 후반이었으나 2012년에는 5.41%, 2013년에는 4.89%(각각 4.4분기 기준), 2014년 3.4분기에는 5.15%로 상당히 부진하다. 글로벌 금융 허브를 지향하면서 금융산업 육성에 공을 들여온 것치고는 매우 초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보신주의가 더욱 팽배해지면서 산업의 젖줄로서 금융의 역할이 줄어든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최 부총리와 같은 시각으로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나 외환위기는 아니지만 금융으로서는 또다른 위기로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금융이 고장난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융회사를 몰아세워 보신주의를 확산시켰다. 수수료, 대출, 금리 등 금융권에 자율적으로 맡겨도 될 사안에도 일일이 간섭해 금융회사의 수익기반을 악화시킨 것도 금융당국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금융감독, 천편일률적이고 고정화된 금융정책으로 금융회사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살려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게 한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고장난 금융을 고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자기 혁신이 먼저여야 하는 이유다.

"홍콩 금융당국은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이다. 감사를 외부기관에 위탁해 간섭을 줄이고 자율을 보장한다.
다만 꼭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매우 엄격하다. 이것이 홍콩 금융의 힘이다.
"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금융허브로 도약한 홍콩. 여기서 근무 중인 국내 대형 금융회사 관계자의 이 같은 발언을 금융당국은 귀담아둘 필요가 있다.

김용민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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