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수사법만 사용되는 정책논쟁

"눈을 감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 "듣기를 중단하라, 그러면 진리를 들을 것이다"는 도가명상(道家冥想)에 나오는 잠언이다.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는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노래 제목이다. '스윗 소로우(Sweet Sorrow·달콤한 슬픔)'는 우리나라 남성 보컬그룹 이름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러한 잠언, 노래 제목, 그룹 이름과 같이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키는 수사법을 형용모순(形容矛盾·Oxymoron)이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수사법은 이외에도 많이 있다. 비유를 위한 은유법·대유법 등이 있고, 강조를 위한 반복법·반어법 등이 있다.

수사법은 문학작품이나 예술분야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생활을 재미있게 표현할 수가 있다. 형용모순만 하더라도 서로 어긋나는, 약간은 역설적인 표현으로 인간의 이성적 논리를 초월한다. 인간의 순수한 감성을 자극해 우리생활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반어법만 하더라도 원래 하고자 하는 말을 반대로 표현해 상대방의 틀린 점을 깨치게 만든다. 못난 사람을 잘난 사람으로 표현해 우리의 일상생활을 미소 짓게 만든다. 또한 토론회 같은 곳에서 사용되면 재미있고 명쾌한 토론회가 될 수도 있다. 반대의 결론에 도달하는 질문으로 원하는 답을 이끄는 일종의 변증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사전달의 좋은 수단인 수사법도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분야가 있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책설명이나 정책논쟁에 있어서다. 국가정책을 표현하는 데는 형용모순을 사용해서도 안 되고, 반어법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정책의 본질을 흐리거나 국민을 현혹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국민을 상대로 정책논쟁을 할 때 정책의 핵심적 내용을 토론하기보다는 각종 수사법이 동원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학교가 밥 먹으러 가는 곳이냐?" 등등이다. 이러한 표현은 아름다운 수사법이 아니다. 자기 생각과 주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 일, 자가당착일 뿐이다.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서울시의 무료급식 논쟁에 이어 최근에는 경남도의 무료급식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벌 손자가 무료급식 대상이 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훌륭한 수사법이 아닌, 대표적인 자기모순(自己矛盾) 주장이다. 초등학교만 해도 5900개가 넘는다. 재벌 손자가 최소한 5900명은 되어야 1개 학교에 1명씩은 다닐 수 있다. 무료급식을 하는 학교에 다니는 재벌의 손자가 몇 명이나 되는가 하는 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도대체 재벌의 손자가 무료급식을 받는 것이 왜 모순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논쟁을 할 때 우리는 세금 문제를 잊어버린다. 세금은 기본적으로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내는 일종의 회비인 셈이다. 사적인 클럽의 회비와 달라서 내야 하는 액수에 차등이 있다. 때로는 마이너스 세금을 내는(보조금 수령) 사람도 있다. 국가의 소득분배 정책인 것이다. 회비(세금)를 낸 사람은 모두 국가가 제공하는 재화와 용역을 무료로 향유할 권리가 있다. 재벌의 손자라도 당연히 무료급식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를 모순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세금으로 유지되는 치안을 소득 수준이 낮은 서민층에게만 국가가 제공해주고 부자들은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하는 논리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학교급식은 소득분배의 문제가 아니다. 소득분배 문제는 일차적으로 소득분배 정책, 즉 세금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또한 학교급식은 단순히 재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육과정 중의 하나이며 아동 개인의 가정 사생활 보호 문제다. 돈을 내고 먹는 학생과 무료로 먹는 학생이 표시 나지 않게 집행할 수 있는 행정기술의 문제다. 수사법으로 논쟁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