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다시 실리콘밸리다

최근 세계적 경기둔화 속에서 미국만이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실리콘밸리'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성장배경 중 하나로 벤처의 산실인 실리콘밸리가 부각되고 있어서다.

머큐리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캐피털 자금 중 120억달러가 실리콘밸리로 흘러들었다. 역대 유입 규모 중 최대다. 자금이 몰리다 보니 구글, 트위터,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 '모바일 결제업체' 스퀘어 등은 돈 관리를 위해 모간스탠리, 골드만삭스, 크레디트스위스 등 월가 베테랑들을 앞다퉈 모실 정도다.

또한 최근 스마트카 열풍이 불면서 포드, 벤츠, BMW, 닛산, 테슬라 등이 실리콘밸리로 속속 입성해 자동차와 융합된 최신 정보기술(IT)을 개발 중이다. 실리콘밸리는 현재 미국의 거대 투자금과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로 위기를 맞았던 이곳이 다시 살아나면서 미국 경기부양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그러나 불과 70~80년 전만 해도 샌프란시스코 남부 배후지역으로 과수원이 많은 시골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방위산업 연구예산 투자 및 대규모 연구개발 시설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39년 스탠퍼드공대 동창생이었던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 두 젊은이가 팰로앨토의 한 차고에서 의기투합해 만든 휴렛팩커드(HP)가 실리콘밸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인텔, 내셔널세미콘덕터 등 반도체 관련 기업이 들어섰고, 팰로앨토 지역의 반도체 관련 주간지가 1971년 기사에서 최초로 '실리콘밸리'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현재는 샌타클래라, 새너제이를 중심으로 샌머테이오, 앨러미다, 샌타크루즈 등 제주도의 약 2배 정도 되는 꽤 넓은 지역으로 확대됐다.

이 지역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것은 1990년대라 할 수 있다. 반도체를 넘어 IT 및 각종 첨단기술 기업들이 속속 입성하면서 엄청난 자금이 몰렸고 이른바 '닷컴 버블'이 시작됐다. 1996년 6300이었던 다우존스지수는 2000년초 1만1700까지 뛰었고,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는 1300에서 5400으로 올랐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해 거품이 꺼지면서 한때 기업실적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는 51%나 떨어졌고, 나스닥은 단기간 동안 80%나 급락했다.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던 실리콘밸리의 추락은 2008~2009년 미국 주가가 폭락하면서 이어졌다.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해 많은 IT 기업들이 사라져갔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카 등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고도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이른바 잡스법 시행으로 새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리콘밸리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HP, IBM, 오라클, 애플이나 구글 등 오랜 기업부터 지난 10여년 사이 등장한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들, 닷컴 버블을 전혀 모르는 신생 그룹인 우주여행업체 스페이스X, 사진 공유 애플리케이션 스냅채트, 전세계 숙박 공유 서비스업체 애어비앤비 등은 물론 자동차 최신기술 개발, 바이오기술업체 등이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달 나스닥지수는 닷컴 붕괴 이후 15년 만에 5000선을 돌파하면서 거품론이 불거졌다. 그러나 나스닥OMX의 아데나 프리드먼 회장은 단순 기술주에만 집중됐던 과거와 달리 스타벅스, 매리엇인터내셔널 등 소비재 및 서비스, 헬스케어, 바이오테크 같은 제약업체 등 비IT기업이 전체 40%에 이른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실리콘밸리의 활황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대안이 만들어질 것이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이기 마련이어서다. 최근 한국의 경기가 안 좋다는 얘기를 많이 전해 듣는다. 미국 경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나선 실리콘밸리처럼 한국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성장동력이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jhj@fnnews.com 진희정 로스앤젤레스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