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세월호 1주기,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실패에서 배우기는커녕 정부·유가족 겉돌기만

16일 세월호 1주기를 맞는 우리의 자화상이 부끄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일 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콜롬비아로 출국한다.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블랙홀'에 갇혀 휘청거리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행정부의 '빅3'가 약속이라도 한 듯 세월호 1주기 추모식을 외면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뿐 아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이날 추모행사 대신 서울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국민안전다짐대회'라는 별도 행사를 연다. 추모식에 참석하는 국무위원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정도다. 이들도 정부 주도 행사가 아니라 민간·지자체가 전국 120여곳에서 산발적으로 여는 추모제에 참석하는 것뿐이다.

이유는 다 있다. 대통령의 남미 순방은 국가 간 약속이라 바꾸기가 어렵다. 하지만 왜 하필 16일에 맞춰 순방 일정을 짰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실상 '식물총리'로 전락한 이완구 총리는 대통령을 대신해 추모제에 참석할 형편이 못 된다. 추모 당일 대정부질문 일정을 잡아 여러 국무위원들의 발목을 잡은 국회의 무신경도 놀랍다.

불참 사유가 아무리 그럴싸해도 국민들의 눈엔 현 정부가 세월호 1주기를 애써 외면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잖아도 유가족들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놓고 분노했다. 진상 조사를 맡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도 표류 중이다. 이래선 안 된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를 안산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개최해 달라"고 건의했을까.

지난 2001년 9.11 테러가 터진 뒤 미국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조사위는 사건 발생 2년10개월 만에 567쪽짜리 두툼한 '9.11 보고서'를 내놨다. 조사위는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등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관련자 1200여명을 인터뷰했다. 9.11 이후 부시 행정부가 취한 정부조직 개편 등 주요 정책은 이 보고서에 기초한 것이다. 일본은 동일본대지진 1주기(2012년) 추도식을 아키히토 일왕과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범국가적으로 치렀다.

정부는 국가적 위기를 화합과 재도약의 계기로 바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듯하다. 세월호 사태는 분명 소비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지금도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고 지난 1년간 경기가 나빠진 탓을 세월호에 돌린다면 무책임하다. 정부가 진심을 다해 유가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졌다면 역설적으로 세월호는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국민적 결속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일본의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9.11 보고서'가 나온 뒤 한 칼럼에서 "실패에서 배우는 힘을 보유한 국가냐 아니냐의 차이는 나라의 성쇠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유가족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