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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공적 개혁의 딜레마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17 18:16

수정 2015.04.17 18:16

[여의도에서] 공적 개혁의 딜레마

제우스는 다산과 풍요의 신인 헤르메스로 하여금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는 원리 및 우애와 화해의 증표로서 존중과 정의를 전달하게 했다. 그런데 헤르메스는 인간들에게 정의와 존중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선택된 소수의 사람에게만 분배해야 할지 또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나눠줘야 할지 난감해진 헤르메스가 제우스에게 묻자 제우스는 "그들 모두가 자기의 몫을 갖기를 원한다"는 말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는 더 이상 존속할 수가 없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시민 모두의 공정한 몫의 분배를 역설한 것은 분배의 기준이 훼손되거나 특정집단에 이익이 몰릴 경우 한 사회 전체가 전멸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개혁을 필두로 한 공적개혁도 이런 측면에서 성찰해봐야 할 문제다.
개혁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안전장치 없이 진행되는 공적 개혁은 위험하다. 공적 영역의 축소는 공동체 붕괴의 전조현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통치자가 내리는 정치적 판단이 중요한 이유도 그래서다. 정치적 판단의 공적인 성격은 권위와 보편성, 동일한 방법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규칙,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감싸는 정치적 포괄성이라는 네가지 범주에 규정받는다.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경우 정치적 판단을 통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게 통치자의 주요 자질로 꼽힌다.

그런데 현 정부의 공적개혁 방향은 재정절감과 효율적 생산성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평가다. 오히려 피규제기관의 이익에 의해 규제기관이 포획되는 '규제포획'의 덫에 걸린 양상이다. 국가가 끝까지 보호해야 할 공적 울타리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은 국가의 최종적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지난 3월 말 발표된 행정자치부의 지방공기업 개혁방안도 이런 맥락에서 우려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민간기업과 유사한 수익성과 효율성의 잣대로 공기업 개혁을 추진할 경우 민영화로 귀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부채가 높은 공기업이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서는 공유재산을 민간에 넘기거나 민영화를 통한 부채감축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무분별한 재정낭비 요소를 없애는 것은 공기업 개혁에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민간이 하지 못하거나 수익성은 낮지만 공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을 수행하는 주체는 공기업이라는 대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이런 규제개혁의 바람을 타고 온갖 민원성 규제가 남발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원성 규제 대부분이 환경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정부의 규제개혁 가이드라인에는 이에 대한 지침이 전혀 없어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정한 원칙처럼 불합리한 규제는 풀어주는 게 맞다. 다만 규제 이후 감독과 관리에 관한 명확한 규정도 필요하다.
규제 속성상 한번 풀린 규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나 다를 게 없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사상가인 웰린 셀던은 "어떤 중요한 공공정책이나 공적인 판단도 어떤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보다는 직접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정치적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완벽한 공정성과 중립성을 띤 정치적 판단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공적인 측면에 치우친 정치적 판단이 오히려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진정한 정치적 위험은 정치가 전적으로 이익 추구로 환원됐을 때, 즉 의무라는 규제적 기준이 작동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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