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4월29일 '불편하게 기억'될 한 장면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19 17:40

수정 2015.04.19 17:49

[차장칼럼] 4월29일 '불편하게 기억'될 한 장면

4월 29일, '불편하게 기억될' 역사의 한 장면에 미리 가보자. 일본 총리가 반세기 만(1954년 이후 네 번째)에 미국 의회 연단에 선다. 상·하원(총 535명) 합동연설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 역사상 처음이다.

아베는 연설 중 몇 차례 미국 의원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는다. 기립 박수는 미국이 우방국에 제공하는 최고의 예우다. 박수가 나오는 대목이 몇 곳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양국(미·일)이 안보 동맹을 확고히 하는 역사적 진전을 이뤘다'고 밝히는 부분일 것이다. 이는 바로 전날(4월 28일) 두 나라 정상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을 매듭 지은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유사시 지리적 제약 없이 미군을 후방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미국의 대(對)아시아 방위전략(아시아 재균형정책) 중 하나다.

한 나라의 리더가 우방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국력을 상징한다. 우리에겐 불편한 일이지만, 아베의 리더십이 우방국 미국에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간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원죄 때문에 미국 의회 초청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최근에 만난 한 일본 전문가는 "아베에게 보내는 기립 박수는 (친중(親中) 행보를 보이는) 한국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고 했다.

전후 70년, 글로벌 패권구도가 달라졌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미국은 실리를 우선한다. 미국은 미래를 함께할 가장 합리적인 파트너로 일본을 꼽는다. 아베가 미국 의회에서 전후 책임에 대해 '사죄'니 '반성'이니 하는 불리한 발언을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국교(國交)에서 적국도 우방도, 실리 앞에선 무의미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적국인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의장을 54년 만에 만나 한 얘기도 "미국은 미래를 지향한다"였다.

일본 사회는 '히에라르키(Hierarchie·상하관계가 엄격한 조직·질서라는 뜻)' 의식이 뿌리 깊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편에 선 아베정권을 이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아베정권은 미국과 '경제동맹(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목전에 두고 있다. 쌀 등 농산물 시장을 내어주는 조건이다. 또 미·일 동맹의 상징이자 숙원인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도 미국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집단자위권 확대도 미국이 바라는 바다. 미군 주도의 군사작전에 자위대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도 일단 미국 체면을 세워줬다. 'AIIB 창립 멤버로 들어오면 2인자(부총재) 자리를 주겠다'는 중국의 제안을 일본은 거부했다.

방미 이후, 아베 정권은 주변국에 대한 우경화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아베정권의 정통성이 '전후체제 탈피'라는 점에서다. 이는 일본의 역사수정 및 팽창주의와 맞닿아 있다. 일본군 위안부 부정은 물론, 한국(독도).중국(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러시아(쿠릴 4개섬)와 영토분쟁이 그것이다. 일본에 한국은 더 이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파트너'가 아니다. 의례적인 표현인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2015년 일본 외교청서)일 뿐이다. 아베는 자민당 당규를 개정, 2020년까지 장기집권에 나설 태세다. 짧게는 5년, 우리는 '아베의 일본'을 상대로 전략을 견고하게 짜야 한다.
실리를 봐야 한다. 시간은 권력(장기집권)과 힘(대미 외교력)을 장악한 아베 편이다.
허약한 외교력을 보여선 안될 때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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