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

지령 5000호 이벤트
'선물의 달'이 다가오고 있다. 누구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적혀 있는 달력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단순히 '무슨 날'마다 선물을 해야 하고, 그 선물을 사느라 내 지갑이 얄팍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선물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머리를 더욱 지끈거리게 한다.

그나마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은 가족끼리니까 '원하는게 뭐냐' '필요한게 뭐냐'며 대놓고 물어볼 수라도 있다. 스승의 날은 마치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게임'과 같다. 특히 내 스승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한 스승의 날 선물일 경우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얼마 전부터 아내는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폭풍검색을 한다. 검색어는 한결같이 '어린이집 스승의 날 선물'이다. 그저께는 립스틱으로 결정했다더니 어제는 커피세트로 바뀌었다. 오늘은 "다른 엄마로부터 백화점상품권이 최고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금액을 얼마로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백화점상품권은 지나친 것 아니냐"고 말려봤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세살배기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지 아직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가혹행위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처음 다니던 어린이집을 한 달 만에 그만뒀다. 이후 아내는 딸아이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맞벌이를 하는 친구네의 걱정은 더하다. 두살배기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종일 맡기고 있는데 "종일반은 선생님들도 힘들어서 아이를 잘 돌봐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의 아내는 스승의 날뿐만 아니라 '무슨 날'만 되면 립글로스나 향수, 카드지갑 등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한단다. '우리아이 잘 봐달라'고 로비를 하는 셈이다.

"선생님들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더니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명절 때 바빠서 선물을 못 챙겼더니 아쉬워 하더라. 앞으로 2년은 더 맡겨야 하는데 계속 선물을 안겨야겠죠"라는 친구 아내의 푸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부모 입장에서는 '뭐라도 챙겨줘야 우리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챙겨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먼저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거절하는 것도 한두 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부모들의 이기적인 경쟁심리도 한몫을 한다. '우리아이'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옆집 엄마는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캔커피를 사다줬단다. 이를 받아든 선생님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날 아내는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케이크와 함께 사다줬다. 선생님은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아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잘했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문득 초등학교를 다니던 30여년 전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입학식과 졸업식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학교에 오신 적이 없다. 당연히 스승의 날 선물은 우리 학생들이 마련했다. 호주머니를 털어 1백원, 2백원씩 갹출해 양말 몇 켤레를 샀다. 그리고 한껏 솜씨를 부려 교실 곳곳에 선생님에 대한 감사표시로 장식을 했다.
지금도 별 것 아닌 그 선물을 받고 고마워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선물은 그런 것이다. '물건'이 아니라 감사의 의미를 담은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올해 스승의 날 선물에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가 아니라 '선생님 감사합니다'의 뜻을 담을 수는 없을까.

blue73@fnnews.com 윤경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