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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칼럼] 기로에 선 구조개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22 17:45

수정 2015.04.22 17:45

사정정국 블랙홀 빨려들라.. 총파업 등 노조 저항 거센데

[이재훈칼럼] 기로에 선 구조개혁

완강히 버티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끝내 사의를 표명하자 세인들은 "죽은 성완종이 산 이완구를 쫓아냈다"고 했다. 삼국지의 촉나라 승상 제갈공명과 위나라 총사령관 사마중달에 얽힌 고사(死孔明走生仲達)를 빗댄 표현이다. 그러나 '죽은 성완종'이 쫓아낼 것이 이 총리에 그칠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리스트' 수사를 통해 정치인 몇 명, 기업인 몇 명을 부패 혐의로 옭아맨다면야 무슨 대수겠나. 정작 우려되는 점은 이 총리 낙마 이후 정부 신뢰의 위기와 국정 동력 상실이다.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되어버렸지만 지난달 12일 이 총리가 돌연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뜬금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곧이어 대부분의 정권이 집권 3년차에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단골수단으로 '사정(司正)'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비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후 경남기업, 포스코 등 여러 기업에 대한 수사가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과연 이 시점에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에 나서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 제기는 자연히 파묻혔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은 우리 경제·사회의 비효율성과 경쟁력 저하의 근본 원인"이라며 "이들 분야를 중심으로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천명했다. 이후 4대 구조개혁은 집권 3년차의 핵심 국정과제로 떠올랐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개혁은 그 첫번째 과제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대타협기구에서, 노동개혁은 노사정위원회에서 3월 말까지 이해당사자 간 타협을 도출하기 위해 치열한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부패와의 전쟁이 국정의 화두로 등장했으니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쪽지와 육성 인터뷰, 그리고 죽음으로 정권 실세들에게 반격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총리가 부패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정 혼란은 극에 달했고 결국 사퇴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총리 사퇴로 국정이 이내 정상화될지는 미지수다. 이 총리의 사의 표명에 박 대통령은 '정치개혁' '사회개혁'과 '경제살리기'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정치개혁은 정치인 부패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리라는 시그널이자 사정 정국의 확산을 의미한다.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살리기와는 뭔가 상충된다. 사정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커서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노동개혁은 정부에 매우 버거운 과제다. 이 부문 개혁이 시급하다는 데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돼 있다. 공무원이나 노동조합 등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너무나 거세서 역대 정권이 시도하다가 이내 두손 들었던 사안들이다. 게다가 법 개정이 필요한 탓에 국회, 특히 야당의 협조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개혁으로 정치권이 소용돌이친다면 정부로선 전선이 너무나 분산되는 탓에 개혁을 밀고 나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구조개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큰 선거에 대한 부담이 없는 올 상반기 안에 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기득권자인 공무원노조나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동자단체는 지연작전을 쓰고 있다. 미적대던 공무원단체들은 최근 정부의 연금부담을 늘리는 엉뚱한 내용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야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관한 한 "당사자 간 타협이 우선"이라며 시종 소극적이다. 민노총은 24일 총파업을 시작으로 시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선언한 한노총도 총파업에 나설 움직임이다. 시간은 정부편이 아니다. 노조는 정치파업으로 개혁의 골든타임을 넘기려 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이제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야당은 국민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더 이상 국정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밀고 나가야 한다. 노조의 정치파업은 엄중히 대처하되 노사정에서 공감대가 다져진 사안, 즉 근로시간 단축 및 통상임금 기준 마련이나 상위 10% 임직원 임금 인상 자제를 통한 청년 채용 확대 등을 서둘러 제도화해야 한다.
정부의 정교한 실행계획과 추진력이 절실하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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