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지뢰밭 정치, 쑥대밭 경제

'고비용 정치'가 또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부패 기업인이 남긴 메모 한 장이 나라의 미래가 걸린 개혁 과제들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해 30년 성장의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노사정 대타협은 이미 실패로 끝났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처리시한이 임박했지만 진전이 없다. 금융과 교육 쪽은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조차 못했다.

국회는 거의 마비 상태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여야는 즉각 '정쟁 모드'에 돌입했다. 국정은 뒷전으로 밀쳐두고 거친 언사를 나누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의료법, 크라우드펀딩법 등 경제 살리기 관련 법안들이 언제 처리될지 기약이 없다.

성완종 사건은 우리 정치가 돈 문제에서 얼마나 취약한가를 잘 보여주었다. 부패 기업인의 말 몇 마디, 글 몇 줄에 국무총리가 날아갔다.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거물급 정치인도 여럿이다. 야권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 문제는 매번 고비용의 정치에 휘말려 골병 드는 건 경제라는 사실이다. 중요한 시기에 정치자금 사고가 터져 경제의 맥을 끊어놓기 일쑤다. 고비용의 정치는 경영을 잘하는 기업보다 돈질을 잘하는 기업들을 키웠다. 그런 기업들은 결국 부실화해 국가경제에 짐덩어리가 됐다. 1조원이 넘는 빚을 남긴 경남기업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우리 경제는 여건이 좋지 않다. 간신히 성장률 3%대에 턱걸이하고 있지만 투자, 소비, 수출 등이 모두 비실비실하다. 청년 구직자들이 한 해 50만명이 쏟아지는데 정규직 일자리를 20만개밖에 공급해주지 못한다. 청년 30만이 실업자로 떠돌아야 한다. 며칠 전 치러진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는 20만명이 몰렸다. 청년 일자리 부족은 경제가 제대로 성장을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국회는 마비 상태고 정부는 무주공산이나 다름 없다.

한국은 일본이 걸었던 '잃어버린 20년'의 궤적을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온 지가 이미 한참 됐다. 경제 살리기에 국회와 정부가 있는 힘을 다 쏟아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정치가 경제를 도와주기보다는 훼방꾼 노릇만 한다. 성완종 사건은 부패 기업인이 권력에 접근해 검은 돈을 뿌리고 그것을 폭로한 사건이다. 지정 계좌로 운영되는 후원금과 국가보조금 이외에 5만원권 다발로 거래되는 정치자금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일로 기업인들이 수시로 검찰에 불려다니고 있다. 이번 사건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기업들마저도 노심초사한다.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투자계획을 보류하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돈과 특혜를 주고받는 행위가 당사자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나 고비용의 정치가 기업을 파멸로 이끌고 경제를 망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된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정치의 살얼음판 구조를 안정적인 구조로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려면 '고비용 정치'의 현실과 '저비용 정치'의 규범틀 사이의 괴리를 좁혀야 한다. 규범을 현실에 맞춰 고치자는 주장이 있다. 고비용의 정치를 인정하고 합법화하자는 얘기다. 그렇게 하면 부패만 더 키울 것이다. 현실을 규범틀에 맞춰가야 한다. 이번이 기회다. 어려운 과제지만 규범틀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 규범을 엄격히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지뢰밭 정치가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곤 하는 수십년의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곳은 검찰과 법원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