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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유로존 회복세는 가짜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24 17:14

수정 2015.04.24 17:14

[세계 석학에 듣는다] 유로존 회복세는 가짜

얼핏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는 마침내 치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가는 오르고, 소비 심리는 상승하고 있으며 저유가, 유로 가치 하락,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QE)는 성장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속적인 회복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독일과 유럽연합(EU) 정책담당자들은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회복 조짐을 자신들이 처방한 가혹한 재정강화와 구조조정의 효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선세는 그저그렇고, 아마도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는데다 이마저도 독일식 정책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유로존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4·4분기 연율기준 0.9%에서 지금은 1.6%로 올랐다.

그러나 이는 미국과 영국에 비해 훨씬 낮다.
유로존 경제 규모가 7년 전에 비해 2%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회복'은 적절한 어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 이같은 안도감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우선 저유가의 일회적인 부양효과가 이미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중순부터 올 1월 중순까지 절반 넘게 하락한 뒤 유가는 유로 기준으로는 3분의 1 올랐다. 부분적으로는 유로 가치 급락에 기인한 것으로 전반적인 수입가격을 끌어올린다. 가계 예산과 기업 비용에 미치는 영향은 달갑지 않다.

정책담당자들이 크게 기대하는 수출 역시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실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유로존 수출은 2조유로 가까이 돼 중국을 제쳤지만 수출은 10조유로 규모의 유로존 경제에서 5분의 1에 불과하다. 내수가 취약한 가운데 수출이 성장을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ECB 모델에 따르면 (실질, 교역가중치 기준으로) 유로가 10% 평가절하될 때 성장률 상승분은 고작 0.2%에 그친다.

QE 효과도 오래 못갈 가능성이 높다. 재정확대가 없기 때문이다.

QE는 일부 유로존 기업들이 자본시장 물꼬를 틀 정도로 자금 여건을 개선했다. 그렇지만 소비지출이나 기업투자를 자극하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

유로존 기업 대부분은 은행 융자에 의존하고 있고, 대출조건은 일부 개선됐지만 대출 증가세는 거의 변동이 없다(또 남유럽에서는 계속 줄고 있다). 좀비 은행들이 악성부채를 줄이는 한 이같은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급속한 팽창에 크게 못미치는 유로존의 소폭 성장은 또한 독일의 단골 메뉴인 재정안정과 수출경쟁력 확대 방안이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페인의 성공을 재정 개선 사례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 도리어 회복세는 2011~2013년에 취해졌던 극도의 긴축이 완화됨과 동시에 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경제는 7년 전에 비해 5.7% 쪼그라든 상태이고, 23.7%가-청년은 2명 가운데 한명이- 실업자이다. 또 많은 이들이 구직을 단념했다.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GDP의 5.7%로 EU에서 가장 높았다.

지난해 EU내 최고 성장률을 기록한 아일랜드 역시 독일의 정책 처방 약효와는 거리가 멀다. 규모가 작고 개방도가 높은 아일랜드 경제는 낮은 법인세, 숙련 노동자, 유연한 경제 등 기존에 내재된 강점과 미국과 영국의 강한 경제 회복이라는 외부요인 덕에 수출부문이 활발히 움직였다. 그럼에도 GDP는 역시 위기 이전보다 작고, 실업률은 두자릿수에 이르며 내수는 침체돼 있다.

유로존 경제는 올해 약간 개선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독일이 요구한 정책 덕이 아니다.
또 회복 역시 지속적인 회복이 아닌 일시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이 대차대조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은행 부실을 털어내고, 기업 규제를 제거하며, 독일의 중상주의적인 디플레이션유발 처방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는 유로존 문제가 단시일에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필립 르그레인 前 EU 집행위원장 경제자문·런던정경대(LSE) 유럽연구소 교환 선임연구위원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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