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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코스닥 '불신의 추억'

권병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26 17:09

수정 2015.04.26 17:11

[차장칼럼] 코스닥 '불신의 추억'

거침없이 질주하던 코스닥 시장에 제동이 걸렸다.

'가짜 백수오' 의혹이 불거진 내츄럴엔도텍이 시발점이었다. 장이 좋아 잠시 잊고 있던 '불신'이라는 악재 출몰에 투자심리는 급격히 위축됐다. 의혹의 진위 여부를 떠나 투자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주식을 팔아치웠다. 시장 전체가 출렁였다.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보다는 수급과 심리에 의해 좌우되는 코스닥 시장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내츄럴엔도텍은 의혹이 불거지기 전 임원진 일부가 지분을 팔아치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부자거래 의혹에도 휩싸였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2000년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벤처기업 활성화와 맞물려 코스닥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였다. 새롬기술, 다음, 터보테크, 팬텍 등 소위 '벤처 1세대'로 불리던 기업들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멋모르고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활황세는 그리 길지 않았다. 첨단 기술주의 붐이 꺼지면서 장은 폭락했다. 대박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쓰디쓴 실패를 맛보면서 주식은 다시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5년 노무현정부가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코스닥 시장이 부활 움직임을 보였다. 게임.바이오.엔터테인먼트 등 테마주가 부상하면서 한때 700선을 돌파했다. 당시 직장인들 사이에서 주식을 안하면 손해라는 말이 나돌았다. '이번에는 혹시 다를까'하는 마음에 종목을 골라 투자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차익을 얻기는커녕 원금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코스닥 시장은 부정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시장을 '머니게임'으로 여긴 일부 벤처기업 대주주들이 회사 자금 횡령, 시세·주가조작, 분식회계 등으로 줄줄이 사법당국의 철퇴를 맞았다. 상장폐지도 잇따랐다.

두 번의 실패 이후 주식은 남의 일로 치부해 버렸다.

이렇게 죽어가던 코스닥 시장에 10년 만의 황금기가 찾아왔다. 올 초부터 우상향하던 지수는 700선을 가볍게 넘어섰다. 증권가에선 한동안 상승장이 유지되고 750선을 넘어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과거와 달리 종목들의 펀더멘털이 튼튼해졌고 성장성 높은 업종들이 지수를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주식시장 상장 문턱도 낮아졌다. 상장 문턱이 낮아지자 기업공개에 나서는 기업들이 줄을 선 상태다. 옥석 가리기는 시장에 맡기면 되고 일단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날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장은 돌발 악재가 터지면서 급속 냉각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내츄럴엔도텍 사례는 분위기에 좌우되는 코스닥 시장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돌이켜보면 항상 '신뢰'가 문제였다.

증시 띄우기에 몰입해 시장과 투자자 간 신뢰의 끈을 놓쳐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이유 없이 주가가 오를 리 없다. 묻지마 투자는 금물이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내츄럴엔도텍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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