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아픈 역사 속 우리의 모습

국내 정치는 망자(亡者)의 메모로 인해 요동 치고 있지만 한·중·일 외교가의 관심은 아베 신조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의회연설에 온통 집중돼 있다. 일본 정상 중에선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1957년에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연설한 이래 그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가, 그것도 최초의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한·일의 가장 뜨거운 외교 현안은 일본군 위안부(더 정확한 표현은 '일본군 성노예'이다) 문제라고 할 것인데 아베는 위 미 의회 연설이 확정되자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표현은 인신매매의 주체도 없는 발언이거니와 이마저도 사실은 마음에도 없는 수사(修辭)라 보인다. 사실 아베 총리는 위안부를 '매춘부'라 강변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 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조직인 '일본 회의'의 특별최고고문이기도 하다.

잠시 우리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정묘·병자호란으로 인해 수많은 여성이 끌려갔는데 이들은 머나먼 심양에서 본처에 의해 끓는 물세례를 당하는 등 온갖 학대를 받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고, 일부는 속환(贖還)이라 하여 엄청난 몸값을 지급하고 돌아와도 '환향(還鄕)녀'라고 불렸다. 당시 위정자들과 사대부들은 어렵게 돌아온 그들에게 다시 이혼을 강요해 수많은 환향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속출했다. 이러한 환향녀라는 말 자체가 점점 경멸적인 욕설로 바뀐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다시 위안부 문제로 돌아와서, 당시 머나먼 이국 땅까지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는 특히 위험한 전선으로 보내졌는데 태평양전쟁 말기 버마.필리핀 등에서 이들은 대부분 전투 와중에 죽거나 미군의 공습이 강화되자 일본군이 위안부들을 버리고 퇴각해버려 때로는 그대로 버려지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도 수치심으로 오키나와 등지에 남아 귀국하지 못한 위안부들도 많았고, 고국으로 돌아와도 혼인을 할 수도 없고 마땅한 생계수단도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위안부와 환향녀는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환향녀라 멸시하던 이들은 놀랍게도 현재에도 존재한다. 일부 소위 엘리트 인사들은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라고 일본 우익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고, 여성 근로정신대로 이국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온 이들을 주변 사람들은 위안부로 착각해 이혼을 강요했다고 하는데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은 더 말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2009년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배상 취지의 파기 환송사건 이후 징용 피해자 등의 신일본제철 및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연이은 배상판결이 있었고, 최근 법원은 후지코시에 대한 배상판결을 내리면서 '이번 판결로 피해자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여생을 편안히 보내시기를 소망한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지만 일본 회사들의 국내 재산이 없는 경우 집행도 어렵기에 '판결 자체로 위로'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포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더불어 약 400년 전 그리고 70여년 전 타의에 의해 끌려가 머나먼 이국에서 어렵사리 돌아온 그들 즉 우리의 아내이자 딸, 그리고 누이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가슴 아프지만 우리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이성우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