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금산분리? 금정분리!

은행 옭아맨 족쇄 풀어야.. 정치가 금융 더 망가뜨려

금융은 보통 갑이다. 사람들이 금융을 미워하는 걸 보면 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땐 "월가를 점령하자"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금융이 을이라면 그랬을 리가 없다. 1930년대 대공황 땐 '뱅스터(Bangster)'란 말이 나왔다. 뱅커와 갱스터를 버무린 용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은행 문턱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은 은행이 총만 안 들었을 뿐 날강도나 다름없다고 수군거린다.

갑질에 능한 은행이지만 을의 굴욕도 곧잘 겪는다. 은행의 갑은 금융당국이다.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바로 그들이다. 유독 한국에서 그렇다. 얼마 전 홍콩을 방문했을 때 현지 한국계 은행 관계자로부터 들은 얘기다. 홍콩 금융당국도 감독 룰이 깐깐하단다. 금융사에 수시로 자료 제출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게 다다. 자료만 내면 더 이상 귀찮게 굴지 않는다. 금융사 직원을 피의자처럼 다그치지도, 오라가라 부르지도 않는다. 홍콩이 국제 금융허브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 금융당국도 많이 달라졌다. 특히 윗선이 그렇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취임사에서 "금융개혁은 국민이 주신 소명이기에 아프리카의 들소처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경제관료 출신이지만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시장이 거는 기대가 크다. 진웅섭 금감원장도 조용하지만 꾸준히 시장과 소통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 밑으로 내려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금융권 인사는 최근 기자에게 "위는 됐는데 아래는 멀었다"고 말했다. 위원장·원장이 아무리 닦달해도 피감독기관, 곧 금융사 위에 군림하려는 실무 직원들의 태도는 오십보 백보라는 것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더니, 위원장·원장은 멀고 담당 직원은 가깝다.

며칠 전 감사원이 그 증거를 댔다. 경남기업은 지난 2013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고 신규 지원을 받았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 금감원 담당 국장과 팀장이 끼어든 사실을 밝혀냈다. 경남기업에 특혜를 주라고 채권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요청을 단칼에 자를 만큼 용감무쌍한 금융사는 한국에 없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도대체 슈퍼갑 금융당국을 뒤에서 조종한 울트라슈퍼갑은 누구인가. 바로 정치다. 성완종 전 의원은 2012~2014년 2년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정무위는 금융위·금감원을 지도·감독하는 곳이다. 금융위원장은 정무위 인사청문회를 거친다. 수시로 업무보고도 한다. 한국은행(기획재정위 관할)과 다툴 때 금감원의 역성을 들어주는 곳도 바로 정무위다. 이렇듯 금융당국과 정무위는 종종 한통속이다.

한국 금융은 '소비자→금융사→금융당국→정치권'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구조다. 물론 최상위 포식자는 정치다. 관피아·모피아·금피아가 물러간 자리를 정피아가 차지했다. 우리나라 금융이 딱 요 수준이다. 이러니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아프리카 어느 나라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금융권이 경남기업에 물린 돈이 수천억원에 이른다. 좀비기업을 연명시키는 정치금융은 고객을 등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 금융을 이렇게 놔둘 순 없다.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스티브 잡스의 패러다임 시프트 같은 충격이 필요하다. 판을 확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휴대폰 후발주자인 애플이 노키아·삼성전자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자 잡스는 아이폰을 앞세워 새 판을 짰다. 그 판으로 허겁지겁 삼성전자가 뛰어들었다. 노키아는 헐떡대다 포기했다.

정치인들에게 호소해 봤자 입만 아프다. 아예 정치가 금융을 넘보지 못하도록 방화벽을 쳐야 한다. 명실상부한 민간은행이 그 출발점이다.
은행에 주인부터 찾아주는 게 급선무다. 정부가 민간에 팔려다 번번이 실패한 우리은행을 바로 그런 은행으로 키우면 얼마나 좋을까. 금융·산업자본을 갈라놓은 금산분리 대못도 뽑을 때가 됐다. 성완종 파문에서 보듯 지금 한국 금융에 필요한 건 금산분리가 아니라 금정(金政)분리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