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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리더십과 조언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29 16:30

수정 2015.04.29 16:30

[fn논단] 리더십과 조언

춘추시대, 제(齊)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재상 관중을 논할 때 그를 천거한 포숙아의 우정 외에 그를 과감히 발탁한 임금 환공(桓公)을 빼놓을 수 없다. 제나라는 강태공으로 널리 알려진 태망공 여상이 건립한 국가이다. 오랜 기간 태평을 이어온 제나라는 제14대 양공 때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양공이 패륜과 폭정을 일삼자 이복형제들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다른 나라로 피신했다. 이런 양공이 신하들에게 살해당하고 그 후임도 곧 죽자 왕위는 비게 되었다. 그러자 도피했던 배다른 형제, 규와 소백 중 먼저 왕궁에 도착하는 이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포숙아의 기지로 소백이 먼저 귀국함으로써 왕에 오르니 그가 환공이다.

관중은 출발이 늦은 왕자 규를 위해 먼저 달려가 소백을 죽이려 화살을 쏘았다. 관중은 소백이 활에 맞아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에 맞았다. 소백은 혀를 깨물어 피를 흘리며 죽은 척하며 관중을 따돌렸다. 결국 소백이 먼저 도착해 왕이 되었다. 역적으로 죽음에 몰린 관중에 대해 포숙아는 환공에게 그를 죽이지 말고 중용하라고 간청했다. 더 나아가 포숙은 관중에게 최고위 재상의 직위를 내리고 그를 형제의 예로 영접해줄 것을 당부했다. 비록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적이었지만, 환공은 흔쾌히 자신을 낮추어 관중을 맞았다. 결국 관중은 민생을 위한 부국강병 정책을 펼쳐 춘추 5패 중 첫 번째 패권국가의 과업을 이루었다.

세월이 흘러 관중이 병이 들어 은퇴할 무렵, 병문안 온 환공은 관중에게 후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관중은 신하 중 수조, 역아, 개방을 멀리하라고 조언했다. 역아는 환공이 총애하는 요리사였다. 언젠가 환공이 지나가는 말로 산해진미는 다 먹어보았으나 사람 고기는 먹어보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역아는 자신의 어린아이를 삶아서 환공에게 바쳤다. 이를 알고 환공은 경악했으나 한편으로 충성심에서 비롯된 일로 넘겼다. 자신을 친아들보다 중요시하는 것이 갸륵하여 그를 비서실장 격인 내시총관에 임명했다.

수조는 환공을 가까이 보필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인물이다. 환관 제도가 없던 시절, 수조는 은밀한 내실 일을 보기 위해 신뢰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다. 환공을 매일 곁에서 편히 모시니 환공은 그의 말이라면 모두 들어주게 되었다. 개방은 위나라의 왕자로, 환공을 가까이 보필하기 위해 태자 자리를 버리고 15년 동안 충실한 신하로 지낸 사람이었다. 더욱이 개방은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관중의 평가는 간단했다. 역아는 임금의 총애를 받기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죽인 자다. 자신의 자식조차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주군을 사랑하며 충성하겠는가? 수조는 임금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자기 몸을 불구로 만든 사람이다. 자신의 신체조차 아끼지 않는 자가 어찌 주군을 아끼겠는가? 위나라 왕자인 개방은 제나라에서 벼슬하면서 한 번도 부모를 찾아가지 않은 인물이다.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가 어찌 주군을 끝까지 돌보겠는가?

그런 환공도 결국 관중의 유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공이 죽자 수조, 역아 등 간신들이 왕위 다툼을 벌여 몇 달간 환공의 시신을 치우지 못할 정도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제나라는 여씨에서 전씨로 넘어가고 그후 100년간 존속하다가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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