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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음악으로 답하면 된다

지난 1월 19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년 간담회가 끝날 무렵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갑자기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말로는 다하지 못하겠어서" 그는 슈만의 '꿈'을 연주했다. 고액 연봉과 특혜 논란에 대해 입을 연 뒤였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휘자 정명훈은 서울시향을 세계무대로 이끈 장본인이다. 그의 가치를 아는 유럽 어느 국가에서도 개런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적은 없었다.

이날 정명훈은 "내 연봉 만큼을 서울시향에 예산으로 돌려주고 서울시향을 위한 콘서트홀도 지어준다고 약속한다면 돈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서울시향을 아시아 정상으로,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그의 꿈은, 백 마디 말보다 피아노 연주로 진정성 있게 전달됐다.

석달여가 흐른 지난 28일 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의 연주가 울려퍼졌다. 2시간에 걸친 연주가 끝나자 단원 한 명이 무대 위에 올랐다. 올해 창단 70주년, 재단법인 출범 10년을 관객들과 함께 기념하기 위한 서울시향의 깜짝 이벤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무대 위에 오른 단원은 1976년에 입단한 최장 근속 단원 진영규씨였다. 진 단원은 "서울시향은 최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목에 서 있다. 그 길에 여러분께서 많은 사랑으로 동행해달라"며 서울시향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해 말 박현정 전 대표의 막말 논란, 올해 초 정 감독의 처우 문제, 재원 부족으로 인한 미국 투어 무산까지. 서울시향에 한바탕 폭풍이 몰아쳤다.

서울시향을 이끄는 지휘자로서 정명훈은 이날 인사라도 한 마디 할 법 했다.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피터 야블론스키,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 첼리스트 코티에 카퓌송, 바리톤 김주택 등 국내외 최정상의 음악가들이 영상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정명훈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음악으로 이야기했다.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5번의 4악장이 그의 의지와 서울시향의 비전을 보여줬다. '운명 교향곡'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시련과 고난, 휴식, 준비에 이어 4악장에 승리와 환희를 표현한다. 이 곡을 대학생아마추어오케스트라(AOU) 단원 70명과 함께했다. 객석 통로에 AOU 단원들이 가득 찼고 정명훈이 지휘봉을 들었다. 객석과 서울시향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앙코르 전 상영된 영상에서도 서울시향과 AOU의 합동 연주가 울려퍼졌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지난 25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린 플래시몹이었다. 시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 논란을 딛고 화합의 음악을 선사하겠다는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의지가 엿보였다.


앙코르 연주가 끝나고서도 정명훈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밝게 웃으며 객석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관객들은 한참동안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