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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삼성을 세계최고로 이끈 경영철학 '사업보국'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08 15:58

수정 2015.05.08 15:58

[여의도에서] 삼성을 세계최고로 이끈 경영철학 '사업보국'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인 1976년. 당시 재계의 총본산 대접을 받던 '전국경제인연합회' 11월호 회보에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기고문이 한 편 실렸다.

'나의 경영론'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는 지금도 기업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구절이 나오는데, 바로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事業報國)에 있다는 신념에도 흔들림이 없다'라는 대목이다.

사업보국, 기업을 일궈 나라에 보탬이 되겠다는 뜻이다. 지금도 호암의 경영철학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꼽는 항목은 사업보국이다. 말로만 끝났다면 기업가의 뻔한 공치사로 남았겠지만 그 뒤로 삼성이 걸어온 길은 이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호암이 일궈온 삼성의 역사 곳곳에는 그때마다 나라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사업들이 굽이굽이 맥락을 잇고 있다.
6·25전쟁 직후 물자가 태부족일 때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세웠고, 1960년대 들어서 식량생산 증대가 절실했을 때는 한국비료를 설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반도체도 이런 사업보국의 맥락에서 시작됐다. 미국과 일본을 둘러보며 고부가가치 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된 호암은 당시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삼성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반도체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지금의 삼성을 일군 기둥이며, 국내에 전자 산업이 뿌리를 내리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요즘 세대들에게 기업으로 나라를 돕는다는 얘기는 먼지 쌓인 낡은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영철학은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이 진행 중이던 2008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만났다.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을 위해 애플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문제를 건의하자, 애플은 2012년 일부 생산라인을 미국으로 옮겼다. 호암의 사업보국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얼마 전 삼성은 경기도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단지 착공식을 가졌다. 여기에 쏟아붓는 투자금액만 15조6000억원이라는데 국내 기업의 단일투자로는 최대규모라고 한다. 삼성의 이번 투자는 이익만 좇아서는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생산비 절감을 고려했다면 국내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기보다 해외 생산을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조업 기반이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삼성의 이번 평택 반도체 생산단지 건설은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삼성은 이제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됐다. 한때 우리가 부러워하던 수많은 일본 기업들을 무릎 꿇리고 미국, 유럽의 소비자들은 삼성의 스마트폰과 TV, 세탁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지금도 선대로부터 이어온 경영 이념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기업으로 이익을 내고, 그것을 다시 나라에 보탬이 되는 곳에 투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업보국이다.
이미 세계 최대 기업이 된 삼성이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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