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가족간 송사는 승자가 없다

신홍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10 17:03

수정 2015.05.10 17:03

[데스크 칼럼] 가족간 송사는 승자가 없다

방에 걸린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아버지 내 잘 살았지예. 그런데 내 진짜 힘들었어예."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가 했던 마지막 대사다. 아련한 세월을 느끼면서 아버지에게 가족을 잘 보살피고 이끌어 왔다는 고백인 셈이다. 또 가족의 진한 정을 느끼게 한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덕수의 마지막 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도 신경을 쓰지 못하는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가족은 예나 지금이나 '든든한 버팀목'이다.
가족 간에 허물이 있어도 서로 감싸고 이해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가면서 가족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있어 안타깝다. 이러다 보니 가족 간의 다툼이 법정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특히 부모 재산과 관련해 법원에 낸 상속 소송(유류분 반환 소송) 건수는 2005년 158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811건으로 5배나 급증했다.

재계도 예외는 아니다. 재벌닷컴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자산 기준 40대 그룹 중 혈족 간에 재산이나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오너 일가는 절반에 가까운 17곳에 이른다. 웬만한 그룹들은 사실상 '오너 간 분쟁'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재계 5위 롯데그룹은 연초에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이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면서 신동빈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유교적인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부자지간의 대립도 있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의 차남 강문석 전 부회장은 2007년 부친과 경영권 분쟁 이후 퇴진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효성그룹에선 3세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석래 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변호사)은 형 조현준 사장 등 가족과 회사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효성가의 분쟁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고 물러난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 조현준 사장과 동생 조현상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그룹 계열사의 배임 횡령 혐의를 수사해 달라며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자칫 아버지인 조석래 회장으로까지 불똥이 튀게 되면 아들이 아버지를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되는 형국이다. 재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소송이 담낭암을 앓고 있는 조 회장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병을 앓고 있는 조 회장은 만 80세의 고령인데도 법정에 출두해 재판을 받고 있다.

얼마 전 법조계에 있는 지인을 만났다.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그는 최근 들어 가족 간 송사를 많이 맡는다고 한다. 그는 "돈 때문에 소송 업무를 하지만 진행할수록 마음이 착잡하다"며 "가족 간의 송사는 승자가 없다"고 했다. 판결에서 이기고 지고를 떠나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족 관계는 깨지고 가족 구성원 모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중국 한영이라는 학자가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이라는 책에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말이 있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의미이지만 꼭 부모만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형제, 남매도 화해의 시기를 놓치면 기다려 주지 않는 게 세월의 이치다.
올해는 가정의 달이 가족 간의 우애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shin@fnnews.com 신홍범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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