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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우리가 잊고 있는 제주의 정신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11 17:02

수정 2015.05.11 17:02

[fn논단] 우리가 잊고 있는 제주의 정신

우연찮게 제주에 오래 머물게 됐다. 제주도 여기저기를 돌며 제주의 신비에 잠기기도 하고 조석으로 바뀌는 날씨에 당황하기도 하였다. 요즘은 중국 사람들이 몰려와서 중문단지나 노형 5거리 쪽에는 유난히 그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그들의 제주 투자가 활발해 제주에 진출하는 중국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제주 사람들이 그 수혜를 입게 될지는 논란 중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중국인의 투자가 대부분 콘도와 호텔, 카지노 등에 몰리고 있어 이로 인해 혹시나 제주의 '정신적 전통'이 묻히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 있다.

제주의 역사에서 정신적 전통이란 남다른 면이 있다.
그 전통은 다른 지역보다 혹독한 제주만의 자연적, 지정학적 환경을 이겨낸 것이기에 보다 값진 것이기도 하다. 제주는 몽골의 침입이나 출몰하는 왜구, 그것을 막기 위한 가혹한 군역, 이어도 전설에 담긴 그들의 생존적 처절함 등을 꿋꿋하게 이겨온 항쟁과 자기극복의 역사를 전개해 왔다. 그만큼 제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화를 복으로 바꾸면서 자신들의 문화적 능력을 배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제주는 시련을 기회로 바꾸는 자기 단련의 문화들로 가득 차 있다. 단적인 예로 유배인들의 시련을 들 수가 있다. 제주에는 조선조 약 4000명의 유배인 중 대략 260명 정도가 왔는데 이 중에는 한천이나 김만희, 이미 등의 고려 말 '불사이군'의 의리를 중시한 유학자나 김정, 송시열, 김정희 등의 조선조 대학자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고 제주에 미친 교육적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영권은 자신의 '제주역사기행'에서 오히려 제주의 고립과 혹독한 자연이 이들을 일으켜세워 자기극복을 하게 하였으니 이들을 그렇게 바꾸도록 변화시킨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제주라고 역설한다.

그들 중 하나가 추사 김정희다. 제주 서남쪽 대정마을의 추사 유배지에는 추사의 서찰과 글씨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을 돌면서 문득 든 생각은 제주가 추사를 바꾸었듯이 추사의 삶 또한 그를 추모하고 따르는 우리들의 삶을 바꾸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제주가 유배 온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보며 옷깃을 여미고 존경하는 우리마저 바꾼다는 사실은 제주가 가진 힘이 육지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추사는 그의 나이 무려 55세에 유배 길에 올랐고 그 나이에 추사체를 완성하기 위해 벼루 10개를 구멍 내고 붓 1000자루를 닳게 하였다 한다.


그 만년의 뜻하지 않은 위리안치의 고독과 절망, 그리고 그 몸서리 치는 자기극복 끝에서 그가 마침내 도달한 세계는 부귀나 영화, 집착을 떠난 진정한 인간과의 만남, 즉 세한도의 세계였다. 추사뿐만 아니라 제주의 자연과 지정학적 위치가 주는 모든 시련을 이겨낸 그 높고 큰 제주의 역사는 머나먼 육지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지치고 병들어 마치 유배를 살듯 사는 서러운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성찰과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큰 힘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이 정신적 가치들이야말로 제주의 경제적 발전 때문에 묻혀서는 안될 우리 사회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진기 건국대 국어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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