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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제주에서 느낀 부끄러움

김승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12 16:12

수정 2015.05.12 16:12

[차장칼럼] 제주에서 느낀 부끄러움

제주 한경면에 가면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곳이 있다. 예전엔 분재예술원으로 불렸는데 개원 15주년인 2007년부터 지금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1995년, 1998년에 중국의 장쩌민 주석과 후진타오 주석이 각각 방문하면서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찾기 쉽지 않은 한반도의 남쪽섬 제주, 그것도 한적한 곳에 위치한 이 정원을 중국의 최고 거물급들이 해가 멀다하고 찾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곳을 만든 이는 올해로 76세인 성범영 원장이다. 성 원장은 20대 시절 몇번 다녀간 제주가 좋아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가시덤불로 뒤덮인 황무지를 개간해 나무를 가꾸고 돌을 쌓기 시작했다.
1968년에 시작한 작업은 24년 뒤인 1992년에서야 일반에 공개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정원에서 보고 감탄하는 나무, 돌, 물의 하모니는 지난한 시간과 성 원장의 피나는 노력을 거쳐 탄생했다. 때마침 생각하는 정원이 문을 연 1992년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수교 원년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정원을 만들어보겠노라며 우직하게 시작한 성 원장의 노력의 결실은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먼저 그 진가를 알아준 것이다. 이곳을 다녀간 장쩌민 전 중국 주석은 "농부가 혼자 힘으로 이룩한 한국의 생각하는 정원에 가서 개척 정신을 배워라"라며 한창 개혁·개방의 길을 걷고 있던 중국 사회를 향해 소리쳤다.

한반도 남쪽 끝자락의 섬에 있는 조그만 정원에서 6·25 전쟁 이후 피폐해진 국토를 빠르게 발전시킨 우리나라의 저력을 이웃나라 통치자가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그후 중국의 내로라하는 고위직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민일보 등 중국 내 다수의 현지 언론이 성 원장의 집념과 투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소개했다. 특히 올해에는 중국의 9학년 '역사와 사회' 의무교과서에도 실려 교육 현장에서도 모범으로 활용되고 있다.

분재의 원조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 생각하는 정원과 성 원장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도 모자라 자국 국민들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생각하는 정원을 모범 답안으로 여긴 것이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성 원장은 서운한 감정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 고위층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아무리 많은 설명을 해도 대화가 안 된다." 자신이 힘들게 만들어놓은 정원을 한국의 고위직은 왜 방문하지 않느냐는 넋두리가 아니다. 하나의 현상을 놓고 바라보는 한국 사람과 외국인의 인식 차이에 대한 탄식에서다. 중국 고위직은 생각하는 정원을 보면서 한국의 저력과 경제발전상을 느끼고 있는데 우리의 대부분은 '저 나무는 참 비싸겠다'는 단순무지한 생각에 사로잡혀있다는 게 성 원장의 생각이다.

정원 곳곳에 있는 신기한 분재를 보면서 '돈'을 떠올린 기자 역시 성 원장이 생각하는 천상 한국사람이었던 것에 마냥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성 원장은 이 같은 우리 국민들의 잘못이 왜곡된 교육에서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창조적 사고나 생각을 방해하는 교육, 천천히보다는 빨리빨리를 가르치는 교육, 함께보다는 혼자를 가르치는 교육, 대화나 토론을 막는 교육 등등 그의 생각과 우리가 처한 교육 현장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하는 정원을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던 기자가 너무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bada@fnnews.com 김승호 정치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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