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기술 유출, 中企엔 치명타

윤휘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14 16:43

수정 2015.05.14 16:43

[데스크 칼럼] 기술 유출, 中企엔 치명타

지난 13일 본지 주최로 개최된 '제5회 국제 지식재산권 및 산업보안 컨퍼런스'에서 산업기술보호협회 이상노 팀장은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기술유출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은 2003년부터 2014년까지 4700여개에 이르며 이들의 피해금액도 2013년 기준으로 107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실제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업체가 심각한 기술유출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전직 국가정보기관원 A씨에게 들은 얘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경인 지역의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던 일이라고 한다.

정밀기계부품을 생산해 전 세계 주요 기업에 납품하는 이 중소기업은 생산인력이 부족하자 몇 년 전 외국인 근로자들을 채용했다.
이 중소기업은 정밀기계부품 분야에서는 세계 1~2등을 다투는 알짜 기업이었다. 당시 입사한 근로자 가운데 2명은 다른 외국인과 달리 웬만큼 한국어를 구사했으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성실히 일하면서 기존 직원들과도 친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들을 포함한 몇 명이 특별한 이유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그 회사 사장은 이들이 한국에 장기체류하기 위해 잠적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부터 약 1년 후 발생했다. 해외 바이어들이 부품 구매처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외국에서 이 중소기업과 유사한 기술에 훨씬 싼 가격으로 납품하는 경쟁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보유 기술은 특허로 등록하거나 거창하게 법적 보호를 받을 정도로 복잡한 기술은 아니었다. 그저 이 회사 사장이 수십년간 선반 일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전부였다.

당시 국가정보기관에서 근무하던 A씨는 국내외를 오가며 입체 수사를 진행한 결과 이 회사에서 일하다가 도망쳤던 그 외국인 근로자가 이 회사의 기술을 훔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것을 알아냈다. 그 외국인은 현지 유력 기업인의 아들이었고, 이 회사의 기술을 훔치기 위해 마치 '007 스파이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밀한 계획을 짰다는 것이다.

A씨는 그 내용을 해당 기업 사장에게 통보했지만 외국인 고용서류도 없어진 데다 외국 기업과 소송하는 것에 비용부담을 느껴 결국 소송을 포기했다고 한다. A씨는 이 사례를 언급하며 "아마 지금도 자사 기술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기업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대다수 중소기업은 자사의 기술 노하우나 영업비밀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경쟁사들이 자사의 노하우나 영업비밀을 탈취해 유사 제품을 내놓을 경우 회사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안일하게 대응한다는 점이다. 위 사례의 중소기업은 결국 가격경쟁력을 잃어 폐업했다고 한다.

지식재산이 기업의 생명인 시대가 됐다. 지식재산에는 특허출원이나 실용신안등록 같은 거창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사소한 공정개선 노하우부터 거래처 관리, 판매기법 등 다양하다. 노하우나 영업비밀은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들이 민형사 소송을 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소송할 시간과 인력이 없다면 어떤 기술과 노하우가 자사의 지식재산인지 파악한 뒤 '지식재산이 유출되면 회사가 망한다'는 각오로 지식재산 보호에 신경써야 한다.

yhj@fnnews.com 윤휘종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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