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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독일의 운명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18 17:11

수정 2015.05.18 17:11

[fn논단] 독일의 운명

같은 패전국이면서도 독일은 일본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아시아에 군사적인 역할을 증대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평화노선을 표방하며 이에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독일은 '미국의 길'이 아닌 '독일의 길'이 있다며 미국을 지원하지 않았고, 201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리비아 공습 표결에서도 기권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에 등을 돌리고 중국, 러시아와 행동을 같이한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이면서도 NATO가 정한 군사비 지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NATO는 국민총생산의 2%를 군사비로 쓰도록 합의했는데, 독일은 부유한 나라이면서도 1.3%밖에 쓰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은 또한 경제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실리외교를 추구한다. 최근에는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 독일의 대중국 수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독일의 대중국 수출은 840억달러로, 중국은 유럽 역외에선 독일의 제2의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미국 다음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중국이 제1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폭스바겐과 벤츠 S클라스의 제1위 수입국이다. 미국이 대중 강경책을 쓸 경우 독일-중국 동맹이 더욱 강화될지도 모른다.

대러시아 정책에 있어서도 독일은 독자노선을 추구한다. 2013년 러시아는 독일이 사용하는 원유의 38%, 천연가스의 36%를 공급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본 이후 독일은 원자력 사용을 포기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에 독일이 러시아의 제재에 동참하기를 망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재를 강행하려고 하던 메르켈 총리는 산업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 이후 러시아를 방문한 지멘스(독일에서 가장 큰 전자제품 회사임) 사장은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관저로 초대를 받았다. 특별대우를 받은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에서 160년간이나 사업을 하고 있는 지멘스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크스 케버 독일산업연합회 회장도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문을 실어 "독일 산업계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독일의 국민 여론도 반미 성향을 띠고 있다. 호전적인 미국의 외교정책은 유럽에서 별로 인기가 없다.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동방정책을 발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소련과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독일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이것이 독일의 운명인지 모른다. 1918년 토마스 만은 독일의 문화는 프랑스나 영국 등 서유럽의 문화와 다를 뿐 아니라 보다 우월하다고 말했다. 독일의 문화는 러시아와 서유럽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시점 일본의 가장 중요한 군사 외교적 목표는 무엇일까. 페르시아만에서 출발, 인도네시아를 거쳐 오는 긴 석유수송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에 이 문제를 의존해 왔지만 미국은 예산 부족으로 이제 발을 빼려고 한다.
해군력을 강화해야만 하는 것이다. 중국도, 우리나라도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이 떠나면 과연 누구에게 이 문제를 맡길 것인가? 독일의 운명을 보며 우리의 운명을 생각한다.

김의기 법무법인 율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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