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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노인 1000만 시대 오는데

황상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1 17:37

수정 2015.05.21 17:37

[염주영 칼럼] 노인 1000만 시대 오는데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노인들을 자주 본다. 종종걸음을 하는 젊은이들 사이로 비척비척 걷는다. 그런 걸음걸이로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면 위태롭기 짝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늙어서도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릴 수 없는 노인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젊은 시절 일했던 곳보다 훨씬 열악한 곳에서 저임으로 허드렛일을 한다. 그들에게 자식은 멀어졌는데 국가의 손길은 더디기만 하다.


박민수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은 지난 3월 부모를 공양하는 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부모님께 주기적으로 용돈을 드리면 연간 600만원 한도로 소득공제를 해주는 내용이다. 연소득이 6000만원인 사람이 월 30만원씩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면 연간 87만원 정도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매월 꼬박꼬박 부모님 용돈을 챙겨드리는 사람들은 솔깃할 만하다.

그런데 네티즌들의 반응은 예상 밖으로 쌀쌀했다. "소득공제라는 달콤한 이야기가 전혀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네요"라는 반응이 주류였다. "나라에서 세금으로 해야 할 일을 국민에게 미루는 것 같다"는 댓글도 보였다.

잘 살든 못 살든 내 부모는 내가 모신다는 건 옛말이 됐다. 자식이 결혼해 분가하면 어쩌다 용돈을 드리긴 해도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드리는 경우는 드물어졌다. 노인들 스스로도 노후를 자식에게 의탁하려는 생각을 버리는 경향이다. 자식은 낳을 때는 1촌, 대학 가면 4촌, 군대 가면 8촌, 결혼하면 사돈의 8촌이란 얘기가 이젠 우스갯소리가 아닌 세상이 됐다. 부모 공양은 자식 책임이 아니라 국가 책임으로 바뀐 것이다.

통계에서도 이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연평균 소득(959만3000원) 가운데 공적이전소득(국민연금·기초연금 등)이 35%를 차지했다. 자식이 드리는 용돈 등 사적이전소득(23.8%)보다 훨씬 많았다. 2008년에는 공적이전소득이 25.5%에 불과했고 사적이전소득은 44.7%나 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 소득의 변화 속도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6년 동안 사적이전소득(자식 책임)의 비중은 20.9%포인트나 감소한 반면 공적이전소득(국가 책임)의 비중은 9.5%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11.4%포인트 만큼의 격차가 존재한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이탈하는 속도는 빠른데 국가가 다가가는 속도는 느려 그 공백을 다 메워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격차가 노인을 늙어서도 쉬지 못하게 한다. 노인빈곤 문제를 야기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8.5%(2011년 기준)나 된다. 노인 두 명에 한 명이 생계 유지에 곤란을 겪는 빈곤계층이란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34개 회원국 평균(12.3%)의 무려 4배에 달한다. 노인 자살률도 1위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8000달러나 되는 나라에서 노인들의 삶이 왜 이렇게까지 나빠진 걸까. 세계 10위권에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 위상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노인인구는 올해 대략 600만명 정도다. 그런데 10년 후면 1000만명 시대를 맞는다.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노인인구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50~60대는 부모를 봉양했지만 자식들로부터는 봉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다. 노인빈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대비해야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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