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여의도에서] 이력서에 출신학교 이름이 사라진다면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2 17:14

수정 2015.05.22 17:14

[여의도에서] 이력서에 출신학교 이름이 사라진다면

상상을 해보자. 만약 이력서에 출신학교 이름을 없앤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기업의 채용담당자들이 머리가 아파질 듯하다. 서류전형에 응시한 수많은 취업준비생 중에서 학점과 영어능력, 자격증, 다양한 봉사활동과 인턴십 등을 고려해 1차로 채용 대상을 선발해야 한다. 이력서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겠지만 필요한 인재를 뽑기 위해 하나하나 좀 더 면밀하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인적성시험 역시 좀 더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아이큐 테스트나 지식 능력을 평가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면접관도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
우리 회사에 필요한 인재인지, 입사 후 조직에 어울리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등 그야말로 '사람을 보는 눈'이 필요해진다. 막무가내식의 압박 면접이나 차별적인 면접이 아니라 지원자 한명 한명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대해야 가능하다.

입사한 뒤에도 풍경이 조금 달라질 듯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만 시작부터 '○○대 라인'이니, '○○고 동문'이니 하는 불필요한 논란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취준생들은 마음가짐부터 달라질 게 분명하다.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취준생들은 채용시장에서 출신학교의 차이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출발지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영어든, 자격증이든, 다양한 경험이든 할 수 있을 만큼 기업의 눈에 들기 위해 준비를 하지만 시작부터 공정한 경쟁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출신학교가 사라지게 되면 말 그대로 취업 공정경쟁 시대가 열린다.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면 그만큼 다른 사람보다 준비를 덜 했거나 그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된다. 학벌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의 자포자기는 있을 수 없다. 좋은 학교를 나온 취준생들 역시 암묵적인 기득권 없이 본인 스스로의 실력만으로 경쟁을 하게 된다.

취준생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이력서에서 없어져야 할 1순위 항목으로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학벌'을 꼽았다는 점도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다.

사실 대부분의 기업은 채용 때 학벌보다는 능력위주로 사람을 뽑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블라인드 면접.개방형 채용 등으로 예전보다 학벌을 보는 경우는 줄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서류단계에서 한 차례 걸러내기 때문에 오히려 학벌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취준생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열린 채용, 스펙 파괴 등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학벌을 더 보게 됐다고 토로한다. 진정 개개인의 능력만 보겠다고 하면 고졸인지, 대졸인지, 대학원 졸업인지만 기재하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내놨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좀 해봤다는 직장인들은 "학벌과 업무능력과는 크게 연관성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들도 일류대학 졸업자의 승승장구보다는 평범한 대학이나 고졸 입사자가 능력을 인정받고 고속승진하거나 뛰어난 실적을 올린 것을 부각시킨다. 출신에 상관 없이 능력과 성실함이 통한다 점을 강조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드문 사례가 이슈가 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여전히 학벌중심 사회에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자. 기업들이 간판이 아니라 능력을 중요시한다면 채용 과정에서 굳이 출신학교까지 볼 필요는 없다.
입사가 확정된 이후 공식적인 서류를 받아 합당한 자격조건을 갖췄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취업을 위해 학문에 대한 관심도, 캠퍼스의 낭만도, 20대의 젊음도 포기한 취준생들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사회부 차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