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논단] 과연 고객의 책임인가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5 16:49

수정 2015.05.25 16:49

[fn논단] 과연 고객의 책임인가

A대기업 계열 마트가 있었다. 그 마트에서는 여러 생산업자에게서 온 수박을 골고루 판매하는 다른 마트와 달리 A기업 농장에서 재배된 수박만 유독 열심히 판매했다. 그 수박들은 상태도 좋지 않고 곧 상해버릴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아는 전문 도소매업체들은 이를 취급하기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마트는 A기업 수박을 다른 수박보다 더 목 좋은 곳에 배치해 손님들에게 팔았다. 손님들이 "이 수박 괜찮나요?"라고 물으면, 주인은 "대기업에서 문제 있는 수박 팔겠어요"라고 했고 손님들은 그 대기업 이름을 예전부터 들어 왔고 가게 주인을 믿었기에 그 수박을 사갔다. 손님들은 으레 그러하듯 점원에게 "제일 괜찮은 걸로 골라 주세요"라는 말을 했지만 마트 주인과 점원들은 위 수박만 주로 골라주었으며 점원들은 위 수박을 팔면 시급을 더 받기도 했다.


수박 겉에 품질등급이 적혀 있기는 했으나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 있어 눈에 띄지도 않았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때로는 A기업 농장에서 언제든지 새것으로 바꿔주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위와 같은 판매행위가 반복되자 이를 지켜보던 구청은 뭔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다 싶어 위 마트에 A기업 수박 판매 규모를 줄이라고 했지만 마트 주인은 며칠 시늉만 내더니 이내 판매를 강행했고 한참 동안 손놓고 있던 구청은 더 이상 A기업 수박을 팔지 말라고 최후통첩을 했으나 마트 주인은 A기업 수박 재고가 너무 많이 쌓여있고 팔 곳이 자기밖에 없으니 몇 개월 말미를 달라고 사정을 해 구청은 이를 허락했다.

이에 마트 주인은 기한 내 이 수박들을 필사적으로 팔았으나 결국 팔려나간 수박은 이내 상해버리고 말았다. A기업과 그 생산업체가 모두 부도가 나버렸으니 손님들은 마트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주인은 이내 바뀌었고 "가게 주인과 A기업이 수박이 곧 상할 것인지 알고 판 것이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손님들에게 "수박이 언젠가는 상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았느냐" "오히려 우리 가게 자료를 보니 수박을 사간 기록이 많던데 수박에 대한 전문가 아니냐, 수박을 산 것은 당신 선택이지 우리 책임이 아니다. 품질등급도 붙여 놓았다"라면서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하니, 위 마트를 믿었던 손님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최근 현재현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2013년 2월부터 9월까지 동양그룹이 발행, 판매한 기업어음(CP).회사채 1조2958억원 모두 사기죄로 인정한 1심과 달리 2013년 8월 중순부터 발행한 1708억원만 유죄로 인정했다. 구조조정이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는 현 회장 등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위 판결의 당부를 떠나 분명한 것은 상당 기간 지속된 동양증권의 CP 등의 판매행태가 자신을 믿고 찾아온 고객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로 동양그룹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금융투자업을 영위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위 판결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바뀐 마트의 손님들에 대한 책임이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성우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