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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증오·갈등으로 얼룩진 노무현 추도식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5 16:49

수정 2015.05.25 16:49

김무성·비노에 막말·물병 '포용 모르는 정치' 드러내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서 볼썽사나운 광경들이 연출됐다. 추도식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했고 일부 참석자로부터 물세례와 욕설·야유를 받아야 했다. 김한길·박지원·천정배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과 야권의 비노 계열 정치인들도 욕설·물벼락 세례를 받았다. 경건해야 할 추도식장은 뿌리깊은 정치 갈등의 난장판으로 변해버렸다.

노건호씨는 유족대표 인사말에서 김무성 대표를 겨냥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반성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고 대놓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국가 최고 기밀인 정상회의록까지 선거용으로 뜯어서 뿌리고 국가 권력 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며 사회를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세워 사익만 채우려 한다"고 강조했다.
노씨는 또 "오해하지 마라. 사과나 반성은 필요없다"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시라"고 울분을 토했고 일부 참석자들은 "이것이 노무현 정신" "속이 후련하다"고 환호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아버지 추도식에서 조문객을 향해 독설과 조롱을 분출하는 모습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통합과 단결을 역설한 '노무현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다. 부적절한 자리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게다가 일부 친노 지지자들은 야권 정치인들에게까지 "쓰레기" "배신자"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자기 생각만 옳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척결 대상으로 여기곤 하는 친노 세력의 민낯을 보여줬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비롯한 야당 지도부의 소극적 대응은 더욱 아쉽다. 문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정권 교체를 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통탄스러운데 분열하는 모습을 보면 노 대통령께서 어떤 심경일까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추도식장에서 벌어진 막말 추태와 행패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고 사후에 사과하지도 않았다. 말 끝마다 '통합'을 외쳐온 문 대표라면 여당과 비노 정치인들을 보듬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은 정파를 초월해 용서와 화합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고인의 뜻을 살리는 길이다. 그러나 친노 세력들은 증오와 갈등을 표출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장으로 전락시켰다. 이는 야권 분열과 친노의 고립을 부를 뿐이다. 문 대표와 친노세력은 지금 코너에 몰려 있다. 계파 청산과 혁신을 통해 야권 재정비를 해야 할 시기에 잘못 처신하는 바람에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다.

얼마전 광주에서 열린 5·18 추모식에서는 문 대표가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 김무성 대표도 욕설과 물세례 봉변을 당했다.
야권의 증오와 반목, 분열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으로 취급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한 한국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난장판이 된 추도식에 국민은 부끄럽고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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