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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값싼 이엽우피소, 비싼 수업료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6 17:19

수정 2015.05.26 17:19

[여의나루] 값싼 이엽우피소, 비싼 수업료

"신뢰는 만들어지는 데 평생의 시간이 들지만, 무너지는 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 말은 억만장자이면서도 평소 검소한 생활태도와 활발한 기부행위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귀감으로 존경받는 워런 버핏이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는 매사의 성공 여부는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가 내세운 가치투자의 밑바탕에 신뢰라는 투자 철학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투자 성공 신화를 만들었고 오늘날 투자의 귀재라고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근래 우리는 10년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사건을 보고 있다. 다름 아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짜 백수오 사건이 그것이다.
아마 올 연말에는 국내 10대 뉴스 중 하나로 틀림없이 꼽힐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지 예측하기가 어려워지니 불안감만 가중되고 있다.

내츄럴엔도텍이란 촉망받던 상장기업이 단 며칠 새 영업이 중단될 지경에 이르렀고, 한때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0위권 내에 자리했던 위상이 상장폐지를 걱정하게 될 처지로 추락했다. 단기간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나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백수오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환불 기준을 두고 우왕좌왕이고, 증권시장에선 주가가 기록적인 하락세를 보이다 못해 이젠 하루 동안 해당 기업의 총 상장주식의 3배 이상이 거래되기도 하는, 다시 말해 온통 초단기 투기꾼이나 판을 치는 시쳇말로 잡주(雜株)로 전락해 버렸다. 안타깝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분명 해당 기업에 있다. 특히 사태 초기의 어정쩡한 해명과 안이한 대책발표가 회복불능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젠 회사 측에서 어떤 발표를 하더라도 소비자나 투자자가 믿을 리 만무하다. 한마디로 교각살우(矯角殺牛) 짝이 난 것이다.

이제 시장에서 회사의 자율적인 해결에 맡기기에는 혼란이 너무 큰 것 같다. 관계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가 무언지 정확히 진단하고 발 빠른 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얄팍한 상혼으로 가짜인 줄 알고도 이엽우피소를 혼합 판매하였다면 엄벌해야 마땅할 것이고, 제품 소비자의 심적·물적 피해보상도 마땅히 책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해 사전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시장에서의 유통·판매 과정에서의 수시 체크 기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살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제품 소비자 못지않게 손해를 본 증권시장의 투자자들의 피해이다.

돈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면 제품 소비자들의 피해보다 주식 투자자들의 피해가 오히려 더 클 것이다. 대략 계산해봐도 한순간에 시가총액 기준으로 1조원 넘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품 소비자와는 달리 환불해 달라는 하소연도 하기 어렵다. 주식투자의 속성상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온통 장밋빛 기업분석보고서를 쏟아내며 매수를 추천해온 증권사들에 불공정한 행위는 없었는지, 그리고 본격적인 시세하락 전 내부자거래나 공매도는 없었는지 등 전반적인 주식매매과정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시장관리자는 기업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의무를 충실히 했는가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누군가 주식시장을 이용한 부정하고 부당한 이익을 보았다면 반드시 환수하고 죄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조금씩 관심을 끈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 그리고 증권시장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회복될지 걱정이다. 우리는 2000년 초 소위 게이트라는 이름의 몇몇 사건이 증권시장의 신뢰를 붕괴시켜 벤처 붐에 찬물을 끼얹었던 기억이 있다.
이 정부의 창조경제 붐이 영향을 받을까 걱정된다.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어이없게도 값싼 이엽우피소 때문에 우리 모두 예전에 이미 냈던 비싼 수업료를 또 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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