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청문회, 정책을 검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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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주의 권한은 단 두 가지다. 하나는 재상(宰相)을 선택.임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상과 정사를 논하는 것이다." 삼봉 정도전(1342~1398)의 '재상론'이다. 혁명적이다.

정도전은 더 나아가 "군주는 국가적 대사만 '협의'할 뿐 다른 정사는 모두 재상에게 맡겨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는 "재상에 상(相.돕는다)을 쓴 이유는 '임금을 도와서(相) 바로잡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헌법도 국무총리에 대해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을 바라보면서 정도전의 '재상론'을 재음미해 본다.

#. 황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법조인 총리'가 다시 나온다. 법조인 출신 첫 총리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1993~1994)다. 이어 이한동, 김석수, 김황식, 정홍원 전 총리가 법조인의 맥을 이었다. 이 중 처음으로 국회 총리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는 이한동 전 총리다. 당시 청문회는 같은 국회의원 출신인 청문위원들의 호의 속에서 싱겁게 끝났다. 그러고 보니 법조인 출신 총리는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그럼 박 대통령은 왜 법조인을 총리 후보자로 선택했을까. 법조계에 던진 이 질문에 되돌아온 답은 "국정철학에 입각해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이기 때문"이었다. 청와대 발표 그대로다. 들여다보니 황 후보자는 부패척결 전문가다. 다만 "법조인에 대해 다소 부정적 여론이 있다"는 물음엔 "대한민국 법무부나 검찰이 권력에 자유로우냐"고 되물었다. 황 후보자가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부패척결은 자기 썩은 살부터 베어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조선 왕조에 국청(鞠廳)이란 제도가 있었다. 청문회와 유사하다. 역적모의 등 국가의 중대사는 국청에서 다뤘다. 신문관은 이삼십명이었다. 전문성을 갖춰 권위와 비중도 높았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정책을 중심으로 업무 수행능력을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자신의 정책적 입장에 대해 발언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준다.

반면 한국의 청문회는 후보자의 위법이나 도덕성 검증에 너무 집착한다. 당리당략에 따라 정치공세성 질문만 난무한다. 후보자가 제대로 답변할 시간조차 없다. 마치 의혹을 밝혀내고 진실을 규명해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청문회를 통한 후보자의 위법이나 도덕성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후보자가 어떤 미래비전을 갖고 정책을 펴 나갈지 듣는 자리는 그간 없었다는 사실이다. 청문회(聽聞會.hearings)는 말 그대로 궁금한 것은 물어서 '듣고', 아는 사실을 '알리는' '모임'이다.

황 후보자의 청문회 정국이 시작됐다.
국회는 청문회 전략을 짜기에 앞서 지금 국민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국민은 청문회 때마다 되풀이되는 '병역면제, 전관예우, 탈세, 역사관…' 등의 단어를 지겨워한다. 그 대신 정책검증을 간절히 바란다.

sejkim@fnnews.com 김승중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