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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소외된 한반도

김홍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29 15:29

수정 2015.05.29 15:29

[월드리포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소외된 한반도

#1. 중국의 한 무제(武帝)는 기원전 139년 서쪽에 위치한 대월지, 오손 등과 동맹을 맺고 당시 북방 변경 지대를 위협하는 흉노에 맞서기 위해 장건을 파견했다. 장건은 흉노에 붙잡혀 대월지와 동맹을 맺는 데 실패했지만 그가 가져온 서역의 진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무제는 실크로드 길목에 있는 여러 국가를 정복하고 서역으로 통하는 길을 확보하게 되는데 이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이 전해지면서 '실크로드(비단길)'로 불리게 됐다.

#2. 그로부터 1000년 이상이 흐른 뒤 명나라 영락제는 해상을 통해 동남아시아, 서역으로 진출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 1405년 정화 원정대를 파견한다. 첫 원정대 규모는 대함선 62척에 병사만 2만7800여명, 항해 기간만 2년4개월에 이른다. 정화는 이후 약 25년간 7차례 원정을 통해 페르시아만에서 호르무즈해협,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총 33개국을 방문해 해상 교역로를 확보하게 되는데 이 길이 '바닷길(해상 실크로드)'이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그의 고향이자 과거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시안(과거 장안)에 초대해 환대했다.
모디 총리의 시안 방문은 지난해 시 주석이 모디 총리의 고향인 인도 구자라트주를 방문한 데 따른 답방 성격이었지만 중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대 잠재시장인 인도와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강화해 미국, 일본 등의 압박정책에 맞서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특히 시 주석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 인도를 적극 끌어들이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또한 시 주석은 이달 러시아 2차대전 승전 기념식 순방길에 육상 실크로드의 거점인 카자스흐스탄, 벨라루스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해 '돈 보따리'를 풀면서 일대일로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러시아와도 앞으로 중국과 고속철을 연결할 계획이 있는 러시아 중부도시 카잔과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고속철 건설에 공동투자키로 하면서 일대일로 계획에 러시아를 끌어들였다.

문제는 이처럼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에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각국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한반도는 소외돼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중국 정부 차원에서 일대일로의 출발점, 경유지 등 구체적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청사진만 보면 한반도는 어디에서도 연계성을 찾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이 일대일로의 자금줄 역할을 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회원국 57개국 중 지분율이 5위를 차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대일로와 한반도를 연결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혈맹 관계였던 북·중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경제교류도 소원해졌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인 북한을 경유하는 한반도 종단철도와 대륙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익스프레스(SRX)를 일대일로와 연계시킬 계획이지만 중국 정부는 아직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7일 중국을 방문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이 중국 고위 당국자들과 나눈 발언이 눈길을 끈다.

AIIB의 대북투자 원칙에 대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푸잉 외사위원회 주임은 "자금지원(원조)이 아니라 커머셜 비즈니스(상업적인 방식)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재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원조는 어렵지만 상업적 원칙에 따라 AIIB 자금을 통해 북한 인프라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AIIB 내에서 거부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뤄져야 하고 회원국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국과 중국이 지분율을 앞세워 대북 지원에 나설 수 있지만 북한이 계속해서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를 추진할 명분을 잃게 된다.
한·중이 꼬인 대북관계를 풀고 일대일로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연계할 해법을 찾길 기대해 본다.

hjkim@fnnews.com 김홍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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