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저축하는 시대, 씁쓸한 이유는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31 17:18

수정 2015.05.31 17:18

[데스크 칼럼] 저축하는 시대, 씁쓸한 이유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다. 저축이 미덕이자 애국이고, 밥 한톨 남겨도 야단맞는 시절이었다. 내남없이 못 먹고 못 입던 1970년대, 근검절약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개인과 가정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재테크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장이 월급을 타 오면 저축할 돈을 떼놓고 나머지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게 가정경제의 법칙이었다. 없으면 안 쓰는 게 당연했다.
기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낙후된 경제 발전에 매진하던 그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저금통장을 만들어 저축에 열을 올리면서 가계저축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가계저축률은 20%를 웃돌았다. 이렇게 적립된 돈은 기업의 대출과 투자로 연결돼 짧은 기간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데 이론이 없다.

경제구조가 다변화되면서 적절한 소비가 내수경제 확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시대, 그 시절 효자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징표가 됐다.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 1·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51만7000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 증가했고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실질소득 증가율 역시 2%대로 안정된 흐름이었다. 그러나 월평균 가계지출은 350만2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2% 늘어나는 데 그쳐 직전 2분기 3.4%, 0.8%에 이어 감소세가 뚜렷해졌다. 소득이 늘었어도 노후·일자리 불안에다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져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다 보니 소비는 줄이고 돈을 쟁여 두려는 심리가 팽배해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구조화 조짐을 보인다는 데 있다. 2012년 이후 3년 연속 소비 증가율이 가계소득 증가율을 밑돌고, 2010년 77.3%로 정점을 찍었던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이 지난해에는 72.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반면 가계저축률은 2011년 3.4%로 바닥을 찍은 뒤 2013년 4.9%, 지난해에는 6.1%로 2004년(7.4%)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이 같은 가계의 소비 유예는 내수시장 침체, 기업활동 위축, 국민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 현실화되는 한국 경제다.

소비든 경제든 현재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심리의 영향이 크다. 특히 정책당국의 경제회복을 위한 일관된 신호와 함께 정부와 국회의 건강한 비판 및 협력은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하고 있는 일본 경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따라서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 과정에서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보건복지부 장관 해임건의안,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 국회법 개정 등을 연계해 개혁의 발목을 잡은 '별건협상' 따위의 관행은 이제 끊어내야 한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역시 지금까지처럼 도덕성이나 직무수행 능력 검증을 통한 국정 정상화를 도외시한 채 정치공방의 늪에 빠지면 국민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뛰어야 할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꺾어놓는다.


가뜩이나 이번 국회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개정안, 크라우드펀딩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외면해 재계의 투자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정치권이다. 국회의 역할 수행에 대해 88%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국갤럽 조사)할 만큼 국민 불신도 심각한 상황 아닌가.

doo@fnnews.com 이두영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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