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메르스 후진국, 정부가 부끄럽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확산일로다. 환자와 격리 대상자가 날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정부의 대응은 무력하기만 하다. 지난 2003년 중국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창궐했을 때 우리나라는 '사스 방역 모범국'이란 말을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메르스 후진국'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지난 3일까지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 30명 중 24명은 보건당국의 격리 대상자 명단에 없던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추가 환자들이 당국의 격리권 밖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이들은 발병 후부터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될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당국이 환자가 발생한 곳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방역망을 치고 있지만 뒷북 대응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보건당국의 방역망은 무용지물이다. 초기에 메르스를 방역망 안에 가두지 못한 것이 화근이다.

지난 20여일 동안 정부가 취한 대응은 시종일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정부 내에서 총괄 사령탑이 보이지 않는다. 첫 확진 환자가 나오고 2주일이 지난 후에야 보건복지부 장관이 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이러니 정부의 초기 대응이 갈팡질팡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부터 방역복 차림으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화를 더 키웠다. 환자 발생 초기에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말 한마디는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메르스뿐만 아니라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모든 질병은 마스크 착용이 예방수칙 1호다. 그는 정부 내에서 1차적으로 메르스 확산 차단의 책임을 지는 주무부처의 장관이다. 메르스와의 일전을 앞두고 각오를 국민 앞에 보여주기는커녕 이 정도의 기본상식조차 몰랐다는 것은 난센스다. 평소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무지를 넘어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은 아닌가. 이런 정부를 바라봐야 하는 국민은 불안하고 화가 난다.

현 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참여정부 초기의 사스 대응과는 너무 다르다. 사스 대응 때는 의심환자가 아직 확진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인데도 총리실 산하에 범정부 차원의 종합상황실이 꾸려졌다. 고건 당시 총리가 직접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당시 전세계에서 81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지만 국내에선 3명에 그쳤다. 메르스는 지난 3년동안 세계에서 110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는데 한국은 지난 2주여 만에 30여명이 감염됐다. 환자 수는 세계 3위이며 환자가 늘어나는 속도는 세계 1위로 발원지인 중동보다 빠르다. 3차 감염 세계 최초 발생국이란 오명도 얻었다. 3차 감염은 방역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이를 막지 못했다.

요즘 시중에는 낙타 얘기가 화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메르스 예방 요령'을 올렸다. "낙타와 밀접한 접촉을 피하라"거나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 또는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 섭취를 피하라"고 알렸다. 우리 국민들은 동물원 사육사가 아니라면 낙타를 볼 일이 없다.
느닷없이 웬 낙타 타령이냐며 국민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이를 풍자한 패러디물이 쏟아지고 있다. 점점 국민들의 놀림감으로 전락하고 있는 이 상황을 정부는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