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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지상파방송의 도 넘은 '떼쓰기'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6.10 17:05

수정 2015.06.10 17:05

[이구순의 느린 걸음] 지상파방송의 도 넘은 '떼쓰기'

한때 꽤 잘나가던 기업이 있다. 특별한 경쟁자도 없고, 정부도 어느 정도 뒷배를 봐줘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잘 벌었다. 기업가 가족들은 비싼 차 타고, 명품 쇼핑도 하고 외식도 자주 했다.

그런데 예전만큼 장사가 안 되기 시작했다. 경쟁자도 여럿 생겼고, 물건의 경쟁력도 신통치 않다. 그러자 기업은 떼를 쓰기 시작한다.
사용연한이 끝나 정부에 돌려줘야 할 공장 부지를 반환하지 못하겠다고 떼를 쓴다. 물건을 팔아주던 유통업체들에는 마진을 줄이라며 물건 값을 2~3배 올린다. 심지어는 선불로 물건 값을 받아놓고도, 물건 팔 때마다 돈을 더 내라고 억지도 부린다.

그런데도 기업가 가족들은 여전히 비싼 차 타고 명품 쇼핑도 하고, 외식도 자주 한다. 주변에서는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의 떼쓰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얘기다. 방송콘텐츠 시장 경쟁이 활발해지고, 일반 콘텐츠 제작업체들이 만든 콘텐츠가 지상파의 콘텐츠보다 경쟁력을 인정받으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미 지난해 말 과거 아날로그 방송에 쓰던 700㎒ 주파수를 정부에 반납하기로 약속했었다. 이 약속 덕분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자신들이 투자해야 하는 디지털 전환비용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정부는 국민의 TV 수상기까지 바꿔주면서 디지털 전환을 완료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700㎒ 주파수를 계속 써야겠다"며 떼를 쓰고 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최근에는 유료방송사들에 무작위로 콘텐츠 비용을 인상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콘텐츠연합플랫폼(CAP)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한꺼번에 모바일로 송출하는 방송 프로그램 값을 3배 가까이 올려놨다. 모바일 인터넷TV(IPTV) 업체들이 무리한 인상이라고 항변하자 프로그램을 공급하지 않겠다며 배짱을 부리고 있다.

게다가 CAP에는 공영방송인 KBS까지 참여했다. KBS는 전국 90% 이상의 가정에서 매월 2500원씩 수신료를 받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공영기업이다. 그런데도 모바일 IPTV에서 KBS 프로그램을 보려면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KBS는 한술 더 떠서 국민에게 수신료를 인상하겠다고까지 나서고 있다.

KBS, MBC, SBS 3개 지상파 방송사가 국내 방송콘텐츠, 미디어산업, 이동통신산업을 통째로 쥐고 흔들고 있는 셈이다. 지상파 방송사와 조금이라도 연결돼 있는 국내 산업군은 지난 7~8년간 하루도 조용한 날 없이 시달리며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는 손도 못 대고 있다.

그런데도 지상파 방송사 누구도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소식은 없다.
어렵다고 아우성을 치면서도 직원들은 여전히 국내 최고급 대우를 받고 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기업가의 가족들부터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지상파 방송사의 떼쓰기가 도를 넘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와 정부는 여전히 지상파 방송사 편만 들고 있으니 산업과 국민은 애가 탄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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