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축구와 환율, 그리고 외교

흔히 축구를 '무기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

그만큼 자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국민들의 열기가 대단해 선수와 관중 모두 전쟁에 버금갈 정도로 격렬하게 부딪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의 축구 축제인 월드컵을 놓고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가다가는 '진짜 전쟁'이라도 날 듯싶다.

세계 축구를 관할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2018년 월드컵 개최지로 러시아를 선택한 사실을 놓고 심각한 비리가 있었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2018년뿐만 아니라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카타르를 선정한 것을 놓고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 문제는 수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거론돼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FIFA의 뇌물과 부패 스캔들을 수사하면서 2018년, 2022년 월드컵 개최지에 대한 논란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FBI는 스위스 검찰과의 공조 아래 지난달 스위스에서 FIFA 전·현직 간부 14명을 전격 체포했다.

이를 놓고 네티즌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일부는 "FIFA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총대를 멘 미국에 박수를 보낸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대다수 세계 여론은 "미국이 이번 수사에 나선 것은 분명히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 FIFA의 부패를 척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미 결정된 개최지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도 이와 같은 세계의 여론을 의식한 듯 미국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비탈리 무트코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간 갈등이 월드컵 개최권 비리 논란으로 번졌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미국이 2018년 월드컵 대회를 러시아로부터 빼앗기 위해 FIFA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며 "미국 내에서 발생하지도 않은 FIFA 사건이 미국 관리의 요청에 의해 조사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러시아의 반응은 그리 강경하다고 볼 수 없다. 만약 한국의 월드컵 개최지 선정이 미 당국의 수사로 번복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광화문에서부터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에서 반미운동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은 결코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닐 것이다.

잠시 축구에서 환율로 주제를 바꿔보자.

중국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바스켓통화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영향력 있는 연방상원의원 두 명이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나섰다.

찰스 슈머(민주당), 린제이 그레이엄 의원(공화당)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에게 보낸 서한에서 SDR 바스켓통화 편입 연기를 공식 요청했다.

두 의원의 요청은 중국이 최근 미국 공무원 400만명의 개인정보를 해킹한데 따른 보복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FIFA 문제 개입이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에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 와중에 러시아와 중국이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것도 영유권 분쟁 해역인 남중국해에서 말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러시아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최고 수준의 환대를 받으면서 두 국가가 세계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두 정상은 당시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미사일방어체계(MD)'를 개발하고 배치하는 것은 국제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지구의 전략적 안정과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친해질수록 미국의 입장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러시아 관계에서 축구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전에 러시아는 외교적으로 미국에 한 방을 먹였다. 미국 또한 러시아와 연결된 중국에 대해 환율을 무기로 겨눌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미국이 일본을 유난히 챙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jjung72@fnnews.com정지원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