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칼럼]

메르스가 주는 메시지

총체적 부실대응이 화 키워.. 방역체계·관행 확 바꿔야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은 꼴이 됐다.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 의료기관이 총력을 펼치지만 한발 늦은 대응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위세는 좀체 꺾일 기미가 안 보인다. 사망자와 확진자, 격리자가 여전히 잇따른다. 15일 현재 사망 16명을 포함해 확진 150명에 격리 중인 사람도 5000명을 넘어섰다.

보건당국의 한순간 방심이 국민을 메르스의 굴레에 갇히게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이 감염병 예방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WHO의 감염병 관련 가이드라인에는 감염병은 국민에게 빨리 알리고 투명성을 높이도록 돼 있다. 초기대응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보건당국은 국민 앞에 할 말이 없게 됐다. 병원명단 공개 불가를 고수하다가 확산 방지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해당 의료기관의 느슨한 대응도 한몫했다. 국가 방역체계 전반에 숭숭 뚫린 구멍이 화를 키웠다. 시계추를 5월 20일로 돌려보자. 당시 보건당국은 메르스 첫번째 환자를 확진하고 같은 병실을 사용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등만 격리관찰 및 역학조사를 했다.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고 이게 첫번째 실수였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이미 같은 병동에 퍼져 있었다. 이때 좀 더 범위를 넓혀 환자들을 격리관찰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이어졌겠나 싶다. 이때가 메르스를 잡을 골든타임이라는 건 미국과 독일 사례가 잘 보여준다. 미국은 작년 5월 2명의 환자가 발생했지만 초기에 보건당국의 철저한 통제로 2차 감염을 막았다.

더구나 메르스 환자를 치료한 병원이름 공개 과정은 정부의 무능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처음에는 공포와 혼란이 커질 것이라며 미공개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병원 명단은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진 상황이다. 인터넷에서 '메르스병원' 다섯 글자만 치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일주일이 지나서야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메르스가 퍼질 수 있는 빌미를 줬다. 메르스가 발생한 지 열흘 가까이 돼서야 범부처 메르스대책회의가 열리고 그때서야 부랴부랴 컨트롤타워를 꾸리는 등의 고질적 뒷북행정도 되풀이했다.

그렇다고 책임을 무조건 정부에만 뒤집어씌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전염병을 가볍게 보는 국민의식이나 불합리한 간병·문병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환자가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며 치료하는 의료쇼핑이나 가족 위주 간병, 단체문병, 다인실 운영 등의 문제가 이번 메르스 사태를 키웠다. WHO도 이를 문제 삼았다. 이런 한국식 보건관행이 메르스를 순식간에 '전국구'로 키우는 데 일조했다.

구멍 뚫린 방역시스템 때문에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인명피해는 물론이고 환자와 가족, 더 나아가 국민이 메르스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걸릴 지경이다. 외국인 관광객 감소와 각종 행사 취소·연기, 이로 인한 소비심리 악화와 소비부진 등 곳곳에 생채기를 남긴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가뜩이나 갈 길 바쁜 한국 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잡았다. 메르스가 금리를 끌어내린 데 이어 추경을 검토하게 만들었다.

일부 환자의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고 4차 감염까지 발생했다. 지난 주말을 계기로 진정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렇듯 메르스 사태는 지속적으로 방역체계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노출시키며 많은 과제를 던져준다. 정부는 전염병 예방부터 진단, 격리 및 치료,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국가방역에 대한 원스톱 대응시스템을 갖추고 시스템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병을 키우는 간병·문병 문화 개선도 주문한다.

당국은 이번 사태가 국가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메르스를 차단해야 한다.
환자이동 및 면회 제한, 접촉자 확인 및 추적 강화는 물론 환자와 접촉자의 여행제한 등 더 강력한 공중보건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 차제에는 긴급방역상황 발생에 대비해 공중보건·공공의료시설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고 선진 보건의료시스템을 갖추는 등의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공중보건기관의 역량 강화와 관련분야 전문인력 양성, 관련시설 투자계획 등이 반영돼야 한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