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잊혀진 공적연금 개혁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시급한 현안들을 밀쳐 둔 것이 벌써 한 달이나 됐다. 이제부터는 메르스와 전쟁을 하면서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지난달 끝난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적연금 개혁의 첫 단계에 불과하다. 다음 단계는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을 개혁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고 있다. 야당은 학업에 뜻이 없어 보이고, 여당은 기피한다. 정부는 그런 여당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조차 침묵하는 것은 이상하다. 공적연금 개혁에 시동을 걸었던 장본인이 아닌가.

제일 황당한 것은 공적연금 개혁이란 말의 뜻이 변질된 점이다. 당초 박 대통령이 공적연금을 개혁하겠다고 했을 때 그것은 분명히 공무원연금에 이어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을 순차적으로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얘기는 쏙 빠지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재정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개혁이 정 반대로 재정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변질됐다. 박근혜정부의 개혁의지가 담긴 핵심적인 국정과제가 야당의 업어치기에 나자빠진 형국이 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담화문을 통해 세 가지 공적연금을 개혁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후 정부는 공무원연금은 1월 말까지, 사학연금은 6월 말까지, 군인연금은 10월 말까지 각각 개혁안을 마련한다는 일정표를 내놓았다. 그러나 하루 만에 말을 뒤집었다. 총선을 의식한 새누리당의 반발 때문이었다. 당시 여당 내부에선 "정부 뒤치다꺼리하다가 골병들 지경"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개혁의 와중에 치러진 4·29 재·보선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다. 골병이 든 쪽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었다. 개혁의 총대를 멘 여당은 압승을 거뒀고, 발목을 잡은 야당은 완패했다. 우리 정치권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정치적 의미를 오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혁에 시종일관 소극적인 자세로 임했다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것을 지켜보고서도 개혁의 총대를 메는 둥 마는 둥 하는 새누리당이 실망스럽다. 야당은 뜻이 없고, 여당은 소신이 없다.

당장 사학연금법을 고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현행 사학연금법은 지급률은 공무원연금을 준용하고 기여율은 별도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대로 하면 사립교원(기여율 7%)은 공립교원(9%)보다 22%나 적게 내고도 받는 돈은 같아지는 모순이 생긴다. 군인연금은 더욱 문제가 크다. 이미 지난 42년간 국민의 세금이 19조원(현재 가치로 28조원 상당)이나 투입됐다. 39세부터 연금을 탈 수 있다. 이런 불합리와 불공평을 고쳐야 할 책임이 국회에 있다.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우선순위다. 국민연금보다 급한 것이 사학연금과 군인연금이다. 2007년에 국민연금을 개혁할 때는 대다수 국민이 저항했다. 그러나 공무원·사학·군인연금의 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때의 국민연금 개혁은 정치권에 악재였지만 지금의 공무원·사학·군인연금 개혁은 호재다. 이 점은 4·29 재·보선 결과에서 분명하게 입증됐다.

우리 국민의 평등의식은 시민혁명을 거친 영국이나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불공평한 것은 못 참는다. '국민연금=서민연금' '공무원·사학·군인연금=귀족연금'이란 등식을 깬다면 국민은 박수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여당이 못 하겠다면 야당이 나서라. 지금까지의 패배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