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면책함정

우리 세상은 면책의 세상이다. 조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그 자신과 연맹 임원 십수명이 정직과 법에 대한 경멸을 드러낸 뒤에야 사퇴했다.

이 같은 행동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를 보자. 2013년과 2014년, JP모간체이스는 금융부정과 관련한 벌금으로 200억달러 이상을 물었지만 최고경영자(CEO)는 2014년과 2015년 각각 2000만달러를 보너스로 챙겼다. 브라질, 스페인을 포함해 많은 국가의 부패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집권당 내 엄청난 규모의 부정이 폭로돼도 정권은 유지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법과 도덕관념들을 경멸하면서 엄청난 공적·사적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능력은 점증하는 불평등 징후의 하나다. 가난한 이들은 사소한 범죄로도 사형을 선고받는 반면 공공자금 수십억달러를 강탈한 은행가들은 백악관 국빈만찬에 초대된다.

일부 사회와 경제 부문에서는 면책이 이제 너무도 광범위해져서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광범위하게 인식되면 여론의 질타에서도 벗어나게 되고, 이를 더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게 된다. '면책 함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례로 미 정치인들은 이제 아주 대놓고 끊임없이 부유층의 기부를 받고 있고, 대부분 대중은 이 같은 재정적 부적절성(클린턴 재단의 도덕적으로 모호한 돈거래처럼)이 드러나는 것을 냉소 속에서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은행 부문 상황은 특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미국과 영국의 금융서비스 산업 도덕성에 대한 면밀한 연구는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가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응답자의 47%가 "경쟁자들이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에 연관돼 있을 것"이라고 답했고, 23%는 동료들이 그 같은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젊은 세대는 이를 보고 배운다. 금융계 경력 10년 미만 응답자의 32%는 "체포될 위험이 없다면 1000만달러를 벌 수 있는 내부거래에 스스로가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물론 이런 부정으로 체포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면책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니다. 일부 사회, 특히 스칸디나비아는 공무원과 재계 지도자들이 윤리적으로 또 정직하게 행동할 것이란 기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다른 나라 같았으면 사소한 문제로 보였을 경미한 위법으로도 장관들이 사임 압력을 받는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회의 '일반화된 신뢰'가 높을수록 경제 실적이 개선되고 삶의 만족도 역시 높아진다. 무엇보다 상거래 합의가 더 쉽게 이뤄지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매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면서 번영된 나라로 뽑히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럼 면책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물론 법을 집행하고,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게 답 가운데 하나다. 법 집행이 불충분할 때는 대중들의 태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중이 고객을 속인 은행가들, 기후를 엉망으로 만든 석유업체 경영진, 태연하게 맞받아친 FIFA 임원들, 선거자금과 뇌물을 대가로 이들 모두를 편드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과 혐오를 나타내면 소수의 위법이 일반화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중의 질타가 당장 부패를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해도 우리 모두에게서 공공재를 훔치는 이들의 삶을 훨씬 덜 쾌적하게 만들 수는 있다.

2016년 미 대선후보 경선주자 가운데 한 명인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선거전을 시작했다. 왜 단 한 명의 월가 CEO도 2008년 금융붕괴를 몰고온 금융범죄로 유죄를 받지 않았는가. 이는 훌륭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미국이 면책 함정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더 단순한 질문도 가능하다. 왜 그때 그 은행가들이 여전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빈만찬에 초대받고 언론의 숭배 대상이 돼 인터뷰를 하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회건 가장 우선시할 수 있는 것은, 또 우선해야 하는 것은 대중의 믿음을 고의로 악용한 정치·경제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을 거부하는 것이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 소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