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함께 할 수 없는 것

박승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6.21 17:12

수정 2015.06.21 17:12

[데스크 칼럼] 함께 할 수 없는 것

졸음과 운전은 함께할 수 없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런 현수막(펼침막)을 자주 보게 된다. '졸음과 당신의 인생을 바꾸시겠습니까' '졸음운전, 목숨을 건 도박입니다'. 지난해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61%가 졸음운전으로 인해 발생했단다. 목숨을 건 도박이란 자극적인 표현도 지나치지 않다. 눈을 감고 운전한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다.

우리가 접하는 일상에서도 함께하기 힘든 일이 많다.
정부정책과 장기비전도 함께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것이 집값정책이다. 기자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를 출입하던 참여정부 땐 1주일에 한 번꼴로 집값안정 대책이 쏟아졌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한 정책이 나왔지만 신통치 않았다. 급기야 2002년과 2005년엔 각각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까지 도입됐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 집을 산다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었다. 당연히 거래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LTV·DTI 규제 완화라는 당근책을 내놨다. 그리고 오는 7월 말 끝나는 규제 완화를 연장할 방침이다. 부동산시장이 살아나야 침체된 내수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10여년 새 180도 달라진 정부의 대응책이다.

최근 자본시장에서도 정부정책과 장기비전이 함께할 수 없음을 실감한다. 코스닥시장 분리 독립이 그렇다. 지난 1996년 개설된 코스닥시장은 지난 2005년 유가증권시장을 운영하던 거래소와 통합했다. 이후 10년 만에 다시 독립 얘기가 터져나왔다. 2005년 주식시장 통합의 논리는 글로벌 경쟁력이었다. 흩어져 있는 시장을 통합해 경쟁력을 살리자는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한국거래소는 활력을 잃어갔다. 글로벌 거래소와 경쟁할 수 있는 동력이 없었다.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거래소는 공공기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몸부림은 올해 초 공공기관 해제라는 결과물을 가져왔다.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거래소는 이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함께 기업공개(IPO)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정부가 코스닥 시장 분리 독립이란 카드를 꺼냈다. 역동성과 자본 활성화를 위해 다시 분리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자본시장의 큰 틀을 바꾸자는 것이다.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자본시장 비전을 찾아볼 수 없다. 또다시 5년, 10년이 흐른 후 재통합이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본시장의 틀이 바뀌는 게 현실이다. 장기비전을 만들고, 밀고 가는 힘을 느낄 수 없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거래소 통합정책을 내놓고, 다시 분리 독립 논리를 만든 것은 공무원이다. 결국 바뀐 정권과 장차관에 따라 정책이 바뀌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도 같은 예다. 이명박정부는 산은 민영화를 위해 정책금융공사를 분리 독립시켰다. 하지만 새 정부는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포기하고, 정금공을 다시 산은과 합쳤다.

최근 만난 상장사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말을 했다.
"정부정책과 국가의 장기비전이 함께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정책에 혼선을 빚고 있다는 비판이다. 기업 하는 사람과 자본시장 관계자는 한숨을 쉰다.
현재의 정치체제(대통령 단임제)에선 정부정책과 장기비전이 함께할 수 없다고. 5년, 10년마다 흔들리는 정책 앞에서 기업가와 자본시장 플레이어가 진정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물음표가 던져지는 대목이다.

sdpark@fnnews.com 박승덕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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