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노 타이' 치프라스 총리의 도전과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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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항상 '노 타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긴급 정상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치프라스 총리는 혼자만 타이를 풀었다.

'노 타이'는 패션이지만 정치적 언어다. 기성체제에 대한 반발이다. 추락하는 경제, 높은 실업률, ECB·국제통화기금(IMF) 등 채권단의 강도 높은 압박에 시달리던 그리스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순응보다 도전을 내세운 '노 타이' 차림의 치프라스를 선택했다. 치프라스가 채권단과 멋진 한판 승부를 벌여줄 것이란 기대감이 표로 연결됐다.

5개월여 끌어오던 그리스와 국제채권단(ECB, EU집행위원회, IMF)의 구제금융협상은 26일(현지시간) EU 정상회의를 끝으로 1차적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치프라스의 '노 타이' 도전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가 마지막까지 버텨온 연금을 개혁하는 방향으로 협상타결방향이 잡혀서다. 국제채권단은 그리스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17.5%에 해당하는 연금지출 규모 축소를 요구해 왔다. 최종안에 포함됐다. 연금과 건강보험료 납입액 증대, 법인세·부가가치세 추가 과세, 고액소득자 추가 과세 등도 타결된 주요 협상안이다.

그리스는 한국엔 먼 나라다. 그리스에 대한 직접적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미미하다. 하지만 '노 타이'의 도전 실패가 시사하는 점은 분명히 있다. 치프라스 총리 등장 과정을 되짚어봐야 한다. 그리스 국민들은 치프라스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자신들의 연금을 지켜줄 것이란 바람이 강했다. 그리스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100%다. 현재의 월급을 퇴직 후에도 그대로 받는다는 뜻이다. 채권단에 갚아야 할 국가채무가 8월 말까지 88억유로에 달하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소득대체율이다. 과도한 복지와 그러한 복지의 지속을 원하는 국민이 치프라스를 선택했지만 국민과 정부 모두 실패했다. 지속가능한 복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스와 채권단의 협상이 타결돼도 한국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또 있다. '노 타이'로 지지를 받았던 치프라스가 '연금축소·세금증대'라는 최종협상타결안으로 그리스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치프라스 총리가 불신임을 받으면서 그리스 국내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도 이어질 수 있다. 유럽 투자금 비중이 높은 한국 주식·채권 시장은 유럽 자금의 유출이란 잠재적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다.

국제채권단 내의 내분 가능성도 리스크다. 350억유로를 그리스에 투입한 IMF가 진원지다. 협상 진행과정에서 IMF는 '유럽 국가라서 긴축 압박이 덜하다'라는 비난을 수도 없이 들었다.
IMF는 중국이 IMF와의 경쟁을 표방하며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브릭스신개발은행(NDB)의 내년 출범이 가시화되고 있어 입지도 좁다. IMF가 협상타결 후에도 ECB 등과 달리 그리스에 대한 선제적 자본통제 등 '강경론'을 고수, 시장을 혼란에 빠트릴 가능성도 있다.

'노 타이'가 패션을 넘어 정치 그 자체이듯 그리스는 한국에 '강 건너 불'이 아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