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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향해 뛴다] (1부·⑨) "생물리학 등 초기단계 연구에 도전하라…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라"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6.30 17:25

수정 2015.06.30 21:41

1부. 과학연구 어디까지 왔나 9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이미 해결된 문제 모방하지 말고, 인류문명에 도움 줄 '대과제'에 도전하라
독일은 7년단위로 연구평가… 한국도 장기간 연구 지원하는 시스템 갖춰야
한국 노벨상 배출시기? 과학 3세대는 돼야하니, 2020년 이후엔 가능할 듯

[노벨상을 향해 뛴다] (1부·⑨) "생물리학 등 초기단계 연구에 도전하라…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라"

【 대구=김미희 기자】 "생물리학(BioPhysics)과 같은 융복합 연구 분야는 학문 초기 단계이므로 획기적 연구를 도출한다면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앞당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디지스트) 총장은 6월 30일 "전통적 물리 분야는 우리나라와 과학선진국 간 학문역사의 많은 차이가 있다"며 "최근에 각광을 받기 시작한 생물리학처럼 융합과학 활성화를 통해 미래 과학기술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벨상 수상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연구풍토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총장은 "우리나라는 과학계의 풀리지 않은 난제나 새로운 현상에 과감히 도전하는 연구문화 조성이 필요하다"며 "이미 다른 나라에서 해결한 문제를 모방하고 개선하는 연구로는 결코 '과학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벨상은 최초의 발견이나 발명을 한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에 인류문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대과제(Big Problem)를 해결하려는 도전적 연구 자세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제언이다.

―한국은 기초과학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초과학 교육과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현재 국내 기초과학의 양적 수준은 경이적으로 성장해 세계 10위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질적 수준이다. 질적 측면에서는 세계 30위권에 머물러 있다. 기초과학의 역량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창의적인 기초연구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과학자들에게 연구 및 예산집행의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하고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해야 한다. 지금까지 32명의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의 연구 수월성 비결도 바로 연구의 자율성과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에 있다. 이 연구소는 7년 단위의 평가시스템을 도입해 연구자들이 다년간 안정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신규 연구개발(R&D) 지원사업인 'X-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매우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에 대한 견해는.

▲과학계의 풀리지 않은 난제나 새로운 현상에 과감히 도전하는 소위 'HRHR(High-Risk High-Return) 연구를 장려해야 한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한 문제를 모방하고 개선하는 연구로는 결코 과학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도전적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도전적 실패가 예산 낭비가 아닌 새로운 창조적 연구 창출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회 인식과 함께 도전적 실패를 용인해 주는 평가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나아가 우수한 기초연구 결과의 빠른 상용화를 통해 연구의 재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철저히 기초연구를 지향하면서도 15억달러의 엄청난 기술 로열티 수익을 창출하는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가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과학영재들을 기초과학전공 분야로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이공계 기피현상은 국가적 적신호이다.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전공 대통령특별장학생 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이 있다. 또 우수한 기초과학전공 젊은 연구자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연구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2018년부터 시행되는 문·이과 통합 교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데.

▲기업은 기초과학 지식이 튼튼한 인력을 원하고 있다. 첨단 기술제품의 수명이 짧아지면서 기초과학의 견고한 지식을 갖춘 사람만이 빠른 기술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추이를 반영해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수학과 과학 교육 강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소위 '과목선택형 수준별 교육'이라는 7차 교육과정의 여파로 고등학교에서 수학, 과학 교육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문·이과 통합 교육은 수학, 과학 교육이 더욱 약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별 없이 기초과학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또 대학에서도 기초과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인문상경계열 학생들도 미적분이나 물리학, 화학, 생물 등을 한 학기씩 필수로 공부하고 있다.

―전 세계 과학자들과 협력하는 형태의 국제적 공동연구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면.

▲우리나라 연구비가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증가해 현재 국내총생산(GDP)당 연구비가 세계 1위이지만 총연구비나 연구인력 측면에서는 미국, 일본, 유럽 등 과학 선진국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매우 낮다. 그러므로 과학 선진국과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협업적 협력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과학 선진국 진입을 가속시키는 데 매우 유효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천문학적 연구비가 요구되는 가속기, 핵융합, 우주과학 등 거대과학분야나 뇌과학 등 인류의 미개척 분야는 국제적 공동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등 국제공동 프로젝트에 우리나라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디지스트) 총장은 "차세대 과학 리더들은 도전적 생각을 가지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며 "과학계의 미해결 과제에 과감히 도전하며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려는 용기와 열정을 가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디지스트) 총장은 "차세대 과학 리더들은 도전적 생각을 가지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며 "과학계의 미해결 과제에 과감히 도전하며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려는 용기와 열정을 가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올 시기를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있는가. 물리학 부문을 유력하게 보는 이들도 많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의 기초과학 학문 수준을 위해서는 통상 3세대가 필요하다. 기초학문의 뿌리를 내리는 1세대, 뿌리 위에 나무가 자라는 2세대, 새로운 발명과 발견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3세대다. 학문의 1세대를 30년으로 잡을 때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최소 60년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시기에 서구 학문을 수용한 후 60여년이 흐른 1949년에 유카와 히데키가 첫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학문의 3세대, 4세대로 총 19명이 노벨과학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과 비교했을 때 90여년 늦게 기초과학이 시작됐다. 1960~1990년대의 1세대를 지나 지금 2세대(1990~2020년대)에 와 있다. 그러므로 3세대가 시작되는 2020년 이후 노벨과학상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리학자로서 가급적 물리 분야에서 첫 한국인 수상자가 나오길 소망하지만 전통적 물리 분야는 선진국의 학문 역사와 많은 차이가 있어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생물리(BioPhysics) 같은 융복합 연구 분야는 학문의 초기 단계이므르 획기적 연구결과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나카무라 슈지 교수의 연구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국내 연구진들에게 귀감이 되리라 여겨지는데.

▲청색 LED를 연구하던 1960~70년대 일본 지방대학인 나고야대학과 중소기업인 니치아화학공업의 연구 환경은 전반적으로 열악했다.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청색 LED 노벨상 수상은 30년간 한 우물만 판 나고야 대학의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와 아마노 히로시 교수의 기초연구를 토대로 니치아화학공업 나카무라 슈지 연구원이 20년간 끈질긴 상용화 연구를 통해 이룬 결실이란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자 및 학계에 주는 시사점은 한 분야를 끈기있게 연구개발하는 과학자의 연구 자세와 연구지원 시스템, 대학과 기업의 긴밀한 산학협력에 의한 협업적 혁신연구 분위기의 중요성이다. 나고야 대학의 기초연구 결과가 없었거나 또는 기업의 상용화 개발연구가 없었다면 청색 LED 연구결과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학자가 노벨상 수상 등 자신의 명예만을 목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자가 노벨상 등 상을 목표로 연구를 하는 것은 올바른 학문적 자세가 아니다. 노벨상 수상은 연구자가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연구 가운데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이고 명예다. 그러므로 노벨상 수상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그러나 경제, 스포츠, 예술 등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상을 고려할 때 노벨과학상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다. 한국인의 노벨과학상 수상은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므로 과학자들의 각고의 노력과 국가 차원에서의 전략이 필요하다. 노벨상은 최초의 발견이나 발명을 한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기에 과학계의 미해결 난제, 인류문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대과제(Big Problem)를 해결하려는 과학자의 도전적 연구 자세가 중요하다. 아울러 이런 도전적 과제를 위한 장기적 연구지원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디지스트 뉴바이올로지 전공에서 운영하고 있는 노벨펠로십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차세대 과학 리더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글로벌 우수 인재를 발굴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과 환경을 제공하는 장학제도다.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쿠르트 뷔트리히 뉴바이올로지 전공 석좌교수가 위원장인 노벨펠로십 선발위원회에서 과학자로서의 발전 가능성과 참신한 연구계획, 학생들의 비전 등을 엄격하게 심사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노벨펠로십에 선정된 대학원생들에게는 국내 최고 수준의 장학금이 지급된다. 또 해외 우수 연구기관에서 연구에 참여할 기회 등이 주어진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과학 리더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제 우리나라는 모방과 추격에 의한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을 넘어 파격적 혁신(Breakthrough innovation)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발명과 발견의 진원지가 돼야 과학 선진국의 위상을 갖게 된다. 차세대 과학 리더들은 도전적 생각을 가지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길 바란다.
특히 과학계의 미해결 과제에 과감히 도전하며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려는 용기와 열정을 가져야 한다.

elikim@fnnews.com

■약력 △63세 △서울대 응용물리학과 △카이스트 대학원 고체물리학과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료물리학 박사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석좌교수 △카이스트 고등과학원 설립추진단장 △카이스트 스핀정보물질창의연구단장 △카이스트 나노과학기술연구소 초대 소장 △카이스트 부총장 △미국 물리학회(APS) Fellow(석학회원) △한국자기학회 회장 △국제자성학술대회 의장 △한국물리학회 회장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DGIST) 초대총장 및 2대총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미래전략분과의장

■수상경력 △한국물리학회 학술상 △과학기술부 선정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10인' △과학기술최고훈장 창조장(1등급) △대한민국 학술원상 △카이스트 국제협력대상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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