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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선망과 연민 사이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09 17:54

수정 2015.07.09 22:03

[여의나루] 선망과 연민 사이

수년 전 필자가 공직에 몸담고 있을 때 아프리카 케냐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우리 정부가 그곳의 한 대학에 정보통신 교육시설을 만들어 기증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이는 차관급 인사였다.

당시 그가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1945년 세계대전이 끝나고 신생독립국들이 막 생겨났던 그때, 케냐도 한국도 같은 처지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그런데 60여년이 지난 지금 한쪽은 도움을 주러 왔고 다른 한쪽은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만나 서있노라고 했다.

받는 입장에서 감사하기는 하지만 자기들도 언젠가는 한국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내전과 권력자의 부패로 얼룩진 케냐의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어떤 회한을 담고 있는지 실감하며 연민을 느꼈다. 회한과 선망이 동시에 담겨 있던, 유난히도 크고 선해 보이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뜬금없이 이 생각이 떠오른 것은 최근의 우리나라 상황 때문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법석을 떨고 전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나라는 후진국 어디쯤에서나 가능할 법한 허점투성이 국가였다. 정부가 초동대처에 실패해서, 정보를 제때 공개하지 않아서 사태를 키웠다고 질타를 당하고 어느 병원은 허술한 환자관리로 일순간에 명성을 잃고 비난의 대상이 됐다. 대부분 맞는 말일 게다. 어쨌든 방역망이 뚫려 질병이 확산됐으니까.

그런데 언론의 질타와 비난처럼 우린 그 정도 형편없는 나라인가? 다행히도 상황이 안정세로 접어드는 지금은 우리가 너무 호들갑을 떨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나온다. 이 소식을 들었을 케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랜 공직생활을 해온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나라가 그리 형편없는 나라는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의 역량과 가능성을 믿는다. 물론 고쳐야 할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고칠 곳은 고치고, 잘못된 것은 왜 잘못됐는지 따져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손가락질과 비난 여론으로 몰아세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냉철한 대응으로 교훈을 얻고 이를 실천에 옮겨 역량을 높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부터 우리 사회는 불신이 만연하고 분노가 폭발하는 사회, 남을 탓하기 바쁜 사회, 공권력과 법질서를 우습게 아는 사회가 돼버린 듯하다. 배려와 존중, 신뢰와 화합의 덕목은 아예 사라진 듯하다. 자기폄하에 빠져 의욕마저 상실한 것 같다. 그런 사회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동안 힘들게 노력해서 여기까지에 이른 자랑스럽고 고마운 역사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 필리핀 등 한때 우리보다 잘살던 나라들이 지금 어떤지를 보라. 최근에는 그리스도 국가부도를 선언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들인들 원해서 그렇게 됐겠는가. 한번 엇박자가 나고 단추가 잘못 끼워지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뒷걸음질이 시작됐을 것이다. 우리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정부대로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수행을 통해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기업은 응분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 국가공동체에 기여해야 한다. 언론은 냉철한 보도로 사회의 목탁이라는 본분을 다하고 민간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지니게 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힘을 합쳐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연민의 대상으로 추락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 세대가 뒷감당을 하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김대희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약력 △55세 △성균관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칼턴대학교대학원 △대통령 방송정보통신비서관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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