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외환은행, 주식회사 맞나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09 17:54

수정 2015.07.09 17:54

[데스크 칼럼] 외환은행, 주식회사 맞나

상황이 이 정도면 외환은행은 주식회사라기보다는 직원 조합에 가깝다.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에 대한 노사 간 벼랑끝 협상 과정에서 주주가치는 훼손된 지 오래다. 자본주의 이념 구현에 가장 밀접한 업종이라고 볼 수 있는 시중은행의 행태라고는 믿기 어렵다. 주주는 없고 직원 이기주의만 남아 있는 게 현재 외환은행의 현실이다.

외환은행을 지배하고 있는 회사는 지분 100%를 보유한 하나금융지주다. 하나금융지주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2015년 3월 기준 지분율 9.47%)을 필두로 7만3443명 주주가 참여한 주식회사다.
주식회사의 존재 목적은 기본적으로 주주를 위한 영리 추구다. 주주에게 위임받아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은 영리 추구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일 책무가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주주가치 경영이 주식회사의 존재 이유인 셈이다.

하지만 요즘 외환은행에서는 주주가치 경영이 사라졌다. 주주는 뒷전이고 회사는 직원 조합이 이끄는 것과 다름없다. 최대 경영 이슈인 하나은행과의 통합은 노조에 휘둘리고 있다. 회사 경영의 한 축으로서 직원들의 참여는 인정된다 하더라도 요즘 행태는 선을 넘었다. 이 상태가 조금만 더 지속되면 하나금융은 허울만 좋은 은행과 합병하게 생겼다. 이래서야 양 은행이 합병한들 서로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지 우려된다.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는 노조의 반대에 막혀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체결된 '2.17 합의서'가 노조에는 '전가의 보도'가 됐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합병시켜 규모를 키우고 시너지를 높이려 하지만 반년 넘게 허송세월이다.

그러다 보니 주주가치가 높아지기는커녕 외려 후퇴하고 있다. 지난해 하나은행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21.2% 증가한 8561억원이었으나 같은 기간 외환은행의 순이익은 17.8% 줄어든 3651억원에 그쳤다. 올해 5월 외환은행 실적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소식까지 나왔다. 주인이 수차례 바뀌면서 투자 부진 등이 겹쳐 경쟁력이 약화된 데다 계속된 노사 대립으로 내부 분위기까지 어수선하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이 좋을 리 없다.

노조 측은 그동안의 협상을 통해 통합 하나.외환은행 명칭에 '외환'이나 'KEB'를 포함시키는 방안, 고용 안정 및 인위적 구조조정 금지, 전산통합 전까지 교차발령 금지 등 사측으로부터 섭섭지 않은 전리품을 얻었다. 노조로서는 명분이나 실리 모두를 챙긴 셈이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이 낸 합병절차중단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합병 여부는 경영권의 중요한 부분이며, 2.17 합의서는 합병 자체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어려운 금융환경을 고려해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법원도 2·17 합의 자체보다는 노조의 지나친 버티기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한때 한국 최고 수준의 은행이라 자부했던 외환은행에 이제는 자부심은 없고 상처뿐인 자존심만 남았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흘러간 옛 노래의 향수가 너무 짙게 배어있는 탓은 아닌지 궁금하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옛 향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주도 더 이상 이 상황을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용민 금융부장 yongmi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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