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칼럼]

늙은 인구, 더 늙은 기업

지령 5000호 이벤트
노동시장 유연화 '발등의 불'.. 근로자 평균연령 44세 넘어

"2030년대면 암이 완전히 정복되고 거의 완벽한 노화예방약이 개발돼 본격적인 장수시대가 열린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미국의 앨버트 브룩스가 2011년에 쓴 '2030년 그들의 전쟁'의 내용이다. 브룩스는 이 소설에서 장수시대가 몰고 올 재앙의 한 단면을 그렸다. 암 정복과 노화방지약 개발로 고령화를 넘어 무병장수시대가 열린다. 이로 인해 고령자를 위한 복지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고 젊은 세대들의 세금 부담은 더욱 커진다. 부담이 커진 젊은 세대는 불만세력이 된다. 이들은 시위와 함께 노인 테러와 납치 살해 등을 일삼고 결국 세대 간 전쟁으로 이어진다.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력쯤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그럴싸하다. 의료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암은 거의 정복 단계다. 아직 제한적이지만 인공장기도 찍어내는 시대다. 그러니 고령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병장수 시대가 오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장수시대 문제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도 고령화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은 이미 발등의 불이 됐다. 그 서막은 고용과 복지 분야다.

사회의 고령화보다 기업의 고령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게 더 큰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민 평균연령은 작년 기준 39.8세다. 1980년(25.9세)에 비해 14세나 높아졌다. 올해는 40세를 넘어설 전망이다.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작년 기준 44.2세로 국민 평균연령보다 4세가 많다. 경제개발기인 1974년의 36.3세에 비해 8세 늘었다. 국내 최대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의 근로자 평균연령은 47세다. 국민 평균연령보다 7세, 근로자 평균연령에 비해서도 3세 이상 높다. 이 회사의 해외사업장 중 최대인 중국 베이징현대차의 근로자의 평균연령이 26세이니 국내 공장의 절반 수준이다.

기업의 고령화 현상은 저출산·고령화 추세와 함께 취업이 고연령층 위주로 늘어나는 데도 원인이 있다. 작년 취업자 53만3000명 중 73%가 55세 이상 고연령층이다. 전체 취업자 비중은 40세 이하가 37%, 40세 이상은 63%에 달한다. 이쯤 되면 '사오정(45세면 정년)'은 옛말이 됐다.

현재의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기업의 고령화는 많은 문제를 불러온다. 우선 임금 등 인건비와 원가상승으로 이어져 제품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올해 기준 베이징현대차 생산직 근로자(약 1만명)의 월급은 평균 5800위안(약 106만원, 상여금 제외)으로 국내 현대차 생산직 근로자의 6분의 1가량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두 배가 넘는 미국에서 앨라배마 공장 직원의 평균 연봉도 7000만원가량이다. 중국과 미국 공장이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고임금은 고령화의 영향이 크다.

경쟁력·생산성 저하와 함께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고령화의 그늘이다. 실제로 1960년 이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전통 대기업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곳은 10%가량이다. 20년 이상 된 기업의 50%, 30년 이상 된 곳은 30%가량만 버틴 상황이다. 고령화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탓이다. 더불어 청년층의 진입을 가로막아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현대차는 정년으로 근로자의 30%가 교체되는 데 앞으로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연령층의 인력 구조조정 등 고령화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뾰족한 해법은 없다. 노조 조직이 활성화돼 있는 대규모 제조업체는 더욱 그렇다. 기업의 고령화 문제를 풀 해법은 노사 간 상생협력이다. 고령화 속에서 노동생산성 향상과 활력 제고·고용 촉진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것은 바로 고용과 근무의 탄력성을 높이는 거다.
임금피크제는 기본이다. 여기에 유연근무제, 직무급제 등 다양한 형태의 근무제도가 시행돼야 한다. 임금피크제는 기업 고령화 문제 해소와 노동시장 개혁의 시금석인 만큼 최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