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조원'. 이는 지난 9일 열린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민간기업의 올해와 내년의 설비투자 규모다. 산업부가 밝힌 91조원의 집계 기준은 이렇다. 기업이 이미 주요 설비투자 프로젝트를 착수하거나 현재 기업과 정부 당국이 협의 중인 프로젝트 및 공장 신증설 투자, 그리고 지난 2월 주요 기업 투자간담회에서 기업들이 밝힌 올해 계획분 34조4000억원이다.
올해 계획분 34조4000억원을 제외하면 기업들의 내년 공장 신증설 등 설비투자 규모는 56조6000억원에 달한다는 것.
엄청난 규모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가뭄 극복, 서민생활 안정, 지역경제 활성화에 역점을 둔 올해 추경안(11조8000억원)을 5배나 웃도는 수치다. 여기에다 올해 30대 기업이 올해 설비 등 시설에 45조원 안팎을 투자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업들의 내년 설비투자는 올해보다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지난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 그룹이 올해 136조4000억원을 투자에 쏟기로 했으며, 이 중 올해 설비에 45조원가량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언뜻 봐서 산업부가 '오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기업들이 밝힌 올해 투자계획은 인정할지언정 기업들의 단순 모색 수준의 프로젝트까지 포함해 수치를 뻥튀기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때문에 '91조원'은 실체가 불분명한 '허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날 산업부가 밝힌 91조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언급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실체가 없는 수치를 발표한다는 게 적어도 공직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기업 설비투자 91조원은 실체는 있으나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산업부는 "기업의 경영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프로젝트가 원활한 투자이행을 위해 정부는 핵심 기자재 수입관세 감면을 확대하고, 주요 투자 프로젝트별 '전담지원관'을 지정.운영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정부 당국의 정책적 지원에 따라 91조원은 설비투자로 그대로 이어질 수 있지만, 반대로 정책적 지원이 안되면 '빛 좋은 개살구'로 매듭될 수도 있다는 것.
결과가 뭐든 최근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91조원에 달하는 기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쳐선 안된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91조원의 프로젝트가 '모색'이 아닌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미래투자 성격이 큰 관련 산업에 돈이 몰리도록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테면 기업의 빠른 사업조정을 돕는 '원샷법(산업활력법)'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길목에서 원샷법이 기업들의 선택을 재촉하는 방아쇠가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yoon@fnnews.com 윤정남 정치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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