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로봇물고기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은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로봇물고기'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을 내놨다. 당시 4대강 수질오염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을 때였는데, 로봇이 수중에서 유영하며 수질 측정, 원격 통신 같은 기능을 수행해 4대강 환경파괴 문제를 예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는 게 이 전 대통령의 설명이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로봇물고기의 크기나 로봇들의 수중 유영 방식 등을 일일이 보고받고 지시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또 정한 시간에 로봇물고기의 유영장면이 나오도록 채근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봇물고기는 이 전 대통령의 핵심정책 목표였던 녹색성장과 4대강 개발의 성과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뀐 뒤 2014년 감사원은 정부 예산 57억원이 투입된 로봇물고기 사업이 대국민 사기극이었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대 정책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창조경제를 현실로 만들어낼 상징적 정책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 17곳에서 개소식을 모두 마쳤다. 22일 인천에 17번째 혁신센터가 문을 여는 것으로 지난해 9월부터 10개월여간 진행된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 이벤트가 완료됐다.

박 대통령은 전국 17개 센터 중 15개 센터의 개소식에 직접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일일이 지역별, 전담 기업별 특성에 맞춰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자리매김을 기원할 만큼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다.

5년의 시차를 둔 로봇물고기와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불길한 데자뷔를 느낀다.

로봇물고기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끝나게 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너무 각별한 대통령의 관심과 성과 보여주기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통령이 직접 일일이 로봇 모양까지 챙길 정도로 관심이 많으니 어떤 개발자가 기한 내 개발이 어렵다거나, 아이디어 자체에 허점이 있다거나 하는 바른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불길한 데자뷔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는 정부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해 적당히 관심을 줄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17개 센터가 지자체와 함께 특색을 살리면서 자생하려면 대통령은 슬그머니 관심을 줄여주고, 센터들이 자기 색깔을 만들어가도록 해줘야 한다. 또 개소식을 마쳤으니 이제는 성과물을 내놓으라고 채근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창조경제는 사실 대단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몇몇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우리 경제의 체질을 젊은 창업기업들이 주축이 되는 체질로 바꾸는 것. 젊은이들이 대기업 취업에 매달리는 것보다 창업하는 것이 더 쉽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창조경제 아닐까. 우리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과 미래세대를 위해 체질변화가 당장 시급한 과제다. 현직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로봇물고기가 돼서는 안 된다. 3년 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창조경제혁신센터가 흉물스러운 빈 공간으로 버려지면 안 된다.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겠다는 과도한 애정과 욕심을 줄여 자생력을 갖춰주는 것. 정부, 국민, 언론이 성급히 성과를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않는 것.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핵심으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해 해줘야 할 과제다. cafe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