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그렉시트' 연례행사 되나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26 17:19

수정 2015.07.26 17:19

[데스크 칼럼] '그렉시트' 연례행사 되나

그리스 사태는 한국엔 '강 건너 불'이다. 은행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그리스인들의 모습이 눈에 익은 정도다. 하루 60유로(약 7만6000원)밖에 인출할 수 없는 그리스인이 느끼는 불안, 피곤, 패배감은 먼 나라 이야기다. 한국과 그리스의 경제적 연결고리가 약해서다. 그리스 익스포저(위험노출액)도 적고 무역관계도 미미하다. 지난 13일 제3차 그리스 구제금융협상이 타결되자 그나마 들리던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단어의 노출 빈도도 크게 줄었다.


그렉시트는 사실 현실화되면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는 대형 악재다. 대충의 흐름은 이렇다. 정치, 경제적으로 충격을 받은 유럽은 유럽중앙은행(ECB)을 통해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한다. 이렇게 되면 '1달러=1유로', 나아가 유로 가치가 달러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 지금도 '강달러'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고심 중인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또 다른 방식의 시장개입을 단행한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환율전쟁'이 본격화된다. 유럽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아시아에 유입돼 있던 유럽계 자금유출이 확대된다. 금융불안이 커진다. 유럽 수출 비중이 12.5%에 달하는 한국의 실물경제도 영향을 받는다. 외환, 주식시장이 출렁인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현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 정상회의에서의 합의대로 연금 삭감, 부가가치세 인상 등의 개혁법안을 지난 15일, 23일 잇따라 통과시키면서 그렉시트는 최악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 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에 백기투항한 후 그리스발 불안 가능성은 많이 줄었다.

문제는 반복적으로 시장을 불안하게 할 방아쇠(트리거)를 그리스 뿐만 아니라 채권단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해법에 대한 채권단 내 분열이다. 표면적으론 그리스 최대 채권국인 독일과 IMF의 대립이다. 유로존 맹주를 자처하는 독일은 "그리스 정부, 국민이 흥청망청 썼으니 허리띠를 졸라매고 세금도 더 걷고 해서 재정수지 적자폭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채삭감(헤어컷) 반대다. EU 규약에도 헤어컷은 없다고 주장한다. IMF는 3700억유로(국내총생산의 1.6배)의 국가부채를 짊어진 그리스가 자발적으로 '부채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분석한다. 3차 구제금융이 예정대로 시행돼 최대 860억유로를 지원받아도 경제정상화가 어려워 부채 탕감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IMF 뒤에는 '최대주주'이자 지분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미국이 있다. 미국은 남동유럽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은 그리스가 만약 러시아와 손을 잡았을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뚫리는 안보위기가 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IMF를 지렛대로 활용, 그리스를 돕는 속내다.

미국과 독일의 대립은 의외로 내달 20일 시한인 구제금융협상 최종타결을 지연시킬 수 있다.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어서다. IMF 동참 없이 유럽 단독으론 860억유로를 마련할 수 없다. 그렇다고 독일은 선례를 만들 수 있어 '원칙'을 버리기도 쉽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MF 입장은 그리스의 구제금융 관련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구제금융협상안에 대한 그리스 내부 반발, 그리스 국내외 상황 등을 종합할 때 그리스의 극적 회생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렉시트가 내년에 다시 핫이슈로 부상할 수 있다.
'강 건너 불'인 그리스를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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