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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주주자본주의의 맹점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26 17:19

수정 2015.07.26 17:19

[차장칼럼] 주주자본주의의 맹점

주주자본주의는 1997년 외환위기로 해외자본 유치가 절실한 상황에서 도입됐다. 기업의 주인은 오너도, 경영진도, 직원도 아닌 '전체 주주'이기 때문에 기업 이윤보다 '주주가치 극대화'가 최고의 경영목표라는 개념이다. 배당확대, 자사주 매입, 대규모 구조조정 등이 주주가치 극대화의 일환이다. 그동안 기업의 체질개선과 경영선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 속에 기업경영의 철칙이 됐다. 하지만 도입 20년을 앞둔 주주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씁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버린, 헤르메스, 칼아이칸, 엘리엇 등 해외 투기자본의 행태에 국내 기업들은 무방비로 노출돼야 하느냐고.

대기업 핵심 계열사들의 외국인 지분율은 보통 50% 안팎이다.
해외자본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단순히 시세차익뿐 아니라 성과배분과 경영에 적극 간섭하는 주주행동주의 펀드까지 들어와 한국을 놀이터로 삼고 있다. 외국인 주주들의 무리한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에 수익성 높은 반도체 사업에 집중하고 다른 사업은 분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소액주주 일부도 이에 찬동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경영진은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는 다각화된 사업구조의 시너지효과가 크다며 거부했다. 그대로 따랐다면 삼성신화는 반도체에 머물렀을 것이다. 단기이익에 치중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래를 내다볼 수 없었고, 경영책임이 막중한 오너와 경영진은 수십년 앞을 생각해야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주주자본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여기에 있다. 주주에게 권한이 있으나 책임은 제한적이다. 주주의 책임은 투자한 돈에 그치지만, 오너는 무한책임을 진다.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51.8%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들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오너라고 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부회장을 오너라고 말하는 것은 경영판단에 책임을 지고 기업의 브랜드와 가치를 높여가기 때문이다. 배당률이 낮아도 삼성전자 주식을 투자자들이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기업에 사회공헌과 대규모 신규 설비투자, 고용확대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역시 오너를 포함한 경영진의 몫이다. 특히 주주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경영권을 위협하는 행태는 기업에 막대한 유무형의 손실을 초래한다. 주주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이러한 폐단을 차단하기 위해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인정한다. 구글이 대표적이다. 주주이익을 앞세운 미국계 벌처펀드 엘리엇의 신념대로라면 창업이후 배당이 전무한 자국의 구글부터 변화를 도모했어야 했다. 하지만 엘리엇이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봐야 한다. 구글의 창업자가 차등의결권을 갖고 있어서다.
먹잇감을 찾는 제2, 제3의 엘리엇을 막기 위해 주주자본주의와 기업의 경영권 안정이 균형을 이루는 게 시급하다. 예를 들자면 장기보유자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하고, 지분보유 공시기준을 현행 5%에서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처럼 0.5~3%로 대폭 낮춰 주주변동을 기업이 즉각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투기자본에 맞선 경영권 방어제도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수백만 직장인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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