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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의 허와 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27 16:37

수정 2015.07.27 16:37

[fn논단]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 개편의 허와 실

국민연금공단 내부조직인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독립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편안이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제안이라는 형식이지만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정부가 추진하다가 폐기됐던 안과 별반 차이는 없다.

개편안은 현재의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 부족 문제를 제기하고, 공사화를 통해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의 2014년 수익률은 5.25%로 국내 63개 기금 중에서 제일 높지만 일본공적연금(12.3%)과 캐나다연금(16.5%),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18.4%) 등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다. 그렇지만 수익률은 평가기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공사 독립을 반대하는 국민연금공단은 1999년 이후 15년간 누적 수익률이 해외 주요 연기금 중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한다. 위험자산인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해외 연기금은 주식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률 등락이 심하기 때문에 단년도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민연금기금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누적 평균수익률이 경상GDP 성장률을 상회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성과는 적정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리스크도 함께 커지기 때문에 온 국민의 노후자산인 국민연금기금을 함부로 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는 기금이 그리 크지 않았던 1999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할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수익률에 초점을 둔 개편방안으로는 곤란하다. 국민연금 기금의 근본적 문제는 '거대성'에 있기 때문이다. 올해 500조원을 넘어서는 기금규모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넘고 있고, 이 추세라면 1000조원, 2000조원에 달하게 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국민연금기금의 찬성 없이는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연금기금은 국내 대부분의 기업의 1대 주주 내지 2대 주주로 등극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연금이 지분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해외자본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흑기사에 머물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주요 기업을 모두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위상에 이르게 될 것이 확실하다. 대안으로 위원회와 공사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고,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기금규모와 운용방법에 따라 특화된 몇 개의 기금으로 나누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문성이 강화될 기금운용위원회와 독립하게 되는 공사와의 관계 정립도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협의를 잘 못하는 한국 상황에서 위원장과 공사 이사장이 상이한 견해를 가질 때 기금운용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대안으로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을 겸임하는 구조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외형적으로 독립된다 하더라도 공사 역시 공공기관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예산·조직 ·인사가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될 때, 소신 있는 기금운용과 탁월한 기금 전문가 스카우트가 어려울 것이다.
공공기관으로서 국회나 감사원 등의 감사는 필요하지만, 예산· 조직·인사의 독립성을 공사에 최대한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기금운용본부가 공사로 독립할 수 있을 것인지는 불투명하지만 기금운용의 헤드쿼터가 금융시장의 중심인 서울과 동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금운용 전문가 다수가 떠날 판인데 전문성 제고에 중점을 둔 기금운용체계 개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치권도 더 이상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생각해서 할 말은 하고 결단할 것은 결단해야 한다.

김용하 순천향대학교 금융보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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